[마켓in][5th 피플]벽안의 한국 전문가를 만나다

by김유정 기자
2011.11.13 15:15:00

매튜 제이미슨 피치 상무

마켓in | 이 기사는 11월 03일 13시 36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김유정 기자] 3대 국제 신용평가사중 한국에 리서치 인력이 상주하는 곳은 피치(Fitch) 한 곳뿐이다. 소버린 등급을 관할하는 국가신용평가팀이 홍콩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피치가 등급을 부여하고 있는 한국 기업 담당 리서치 인력은 모두 여의도에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 그만큼 면밀히 한국 기업들의 신용도를 평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리서치 인력들을 총괄하고 있는 이는 호주 출신의 매튜 제이미슨(Matthew Jamieson) 상무다. 가을 바람이 제법 쌀쌀하던 10월 아침 여의도 교보증권에 위치한 피치 사무실에서 제이미슨 상무를 만나 그가 바라보는 한국 기업들의 신용도와 글로벌 경기흐름에 따른 향후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 매튜 제이미슨 피치 상무(사진=한대욱 기자)
환하게 웃으며 회의실로 들어서는 매튜 제이미슨 상무. 그가 내민 명함에는 `마태 재미슨`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적혀있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그는 `마태 상무님`으로 통한단다. 공기업과 삼성전자 등을 비롯해 23개 유수의 한국 기업들에 대한 신용평가를 총괄하는 국제신용평가사의 헤드답지 않아 보일 정도로 그저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 여느 외국인 인터뷰이(interviewee) 들과 달리 통역을 도와줄 직원도 없이 직접 한국어로 인터뷰를 해도 문제가 없다는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첫 인사에서 대번 느낄 수 있다.
 
호주 출신인 제이미슨 상무는 벌써 한국에 온지 18년째다. 1994년에 한국에 온 이후 1997년부터 3년간 UBS에서 한국 시장 리서치를 담당했고,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골드만삭스에서 한국 시장을 분석했다. 이후 2007년에는 피치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한국 시장만 파고들고 있는 셈이다. "한국과는 인연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웃으며)호주에서 한국인 집사람을 만나결혼했구요, 그 계기로 한국에 와서 한국어 공부도 했습니다. 처음엔 한국에 와서 언어만 배우고 호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있네요."
 
피치는 최근 한국기업 리서치 헤드(Head of Korean Corpor-ate Ratings)직을 신설했는데, 그 자리에 제이미슨 상무를 임명다. 그는 아시아태평양지역 텔레콤 미디어 기술(Telecom, Media & Technology, TMT) 부문 리서치 헤드도 겸직하고 있다. 이전까지 제이미슨상무는 한국에서도 TMT 업종 기업들에 대한 평가를 맡아왔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총괄 헤드로 자리를 옮기면서 요즘은 전 업종에 대한 폭넓은 분석을 섭렵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IT 기업들만 주로 보다가 요즘은 금융 석유화학 자동차 등 모든 업종을 폭넓게 보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의 거시경제도 봐야 합니다. 한국 국가신용등급은 서울이 아닌 홍콩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소버린팀과 자주 대화할 계획입니다. 국가 경제에 대한 리서치와 기업 리서치를 분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 (사진=한대욱 기자)

 

 
제이미슨 상무와 만난 날도 한국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널뛰기를 하고 있고, 코스피는 1800선 회복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3분기 실적 시즌도 코 앞이다. 제이미슨 상무는 2012년에도 글로벌 경기가 올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동시에 한국 기업들의 평균 이익성장률이 2011년 4%에서 내년 5%로 거의 정체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큰 차이는 글로벌 경기, 특히 유로존과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가 취약해졌다는 점입니다. 선진국의 소비가 살아나기 쉽지 않다 보니 수요가 줄어들고, 한국과 같이 수출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의 성장률이 둔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특히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중국의 건설업종만 보더라도 공급이 수요를 이미 초과하고 있어요. 건설업종 성장은 갈수록 부정적일 수 밖에 없어요. 이는 중국 내 자원 수요와도 연관되는데 자원 수요 증가율은 점점 줄어들 전망입니다. 중국의 자원수요 둔화는 호주와 같은 원자재관련 국가들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또 철강 등 섹터의 성장과도 연관 지어 봐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글로벌 경기 둔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중국은 견조했지만 이번에는 중국이 전 세계 경제의 구원투수가 되기는 어렵다는 부분입니다. 중국의 경기둔화(slow-down)가 나타나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타격도 불가피합니다."
 
딱딱하고 골치 아픈 거시경제 이야기를 너무 오래 나눈 듯해 그의 전공인 IT 기업들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물 만난 고기처럼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대한 각종 데이터와 날카로운 분석이 쏟아진다. 삼성전자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 IT 기업들의 성장성이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앞서 언급한 선진국의 수요가 줄어드는 등 실적 개선 가능성이 높지 않고 가격 경쟁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삼성그룹의 인수합병(M&A)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놨다. "그저 그런 M&A는 할 필요가 없는 기업입니다. 새롭게 사업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비즈니스도 없구요. 한때 해외 PC 회사 인수설이 돌기도 했습니다만 사업 중복일 뿐 시너지를 일으킬 만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삼성그룹이 적극 추진할만한 딜로 보지 않았습니다. 특허 등 기술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수를 할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겠지만 이런 경우 견조한 재무재표와 시너지 등을 감안할 때 신용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LG전자에 대해서는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을 피력했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LCD TV 부문과 휴대폰 부문의 개선 여부가 중요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등급 변화 여부를 언급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조심스럽게 워치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늬만` 한국 전문가가 아니다. 다소 불편할 법 한데도 공식 석상에서도 한국말을 사용하기를 고집한다. 피치가 실시한 세미나에서도 제이미슨 상무는 한국어로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해 참석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에서 세미나를 갖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통역조차 없이 영어로만 행사를 진행하는 곳도 있어 참석자들에 대한 배려를 높이 평가 받은 듯 하다. 그의 공식 프로필에는 학력과 경력 외에도 서울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 랭귀지 코스를 2년 반 동안 정식 수료했다는 사항이 적혀있을 정도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신흥국? 이머징 마켓이 신흥국이죠? 인터레스트 레이트(interest rate)…아 금리라고 하면 되죠?" 하는 식으로 쉽게 풀어 얘기하는 습성이 드러난다.
 
관계사인 한국기업평가 직원들에게도 그는 마음씨 좋은 마태 상무님이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다 보니 오고 가며 엘리베이터와 로비 등에서 한기평 직원들과 만나면 늘 반갑게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다. 한기평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의 임원이다 보니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만 마태 상무님에 대해 물어보면 "아 사람 참 좋으시죠." 하는 말부터 나온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상향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점에서 국제신평사의 시선이 친절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전반적인 경제 기초체력이 선진국보다 낫다는 점에선 동결 내지는 상향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지만 취약한 외국인 자본 유출입 흐름은 신용등급 결정에 불리하다. 피치 역시 어떤 시선으로 한국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친절한’ 결정을 기다리며 긴 대화를 마쳤다.

*약력 △1991년 시드니 UTS(University of Thechonoly) 토지경제학(Science in Land Economics) 학사 △1991~1994년 시드니 BT Property Trust 부동산담당 애널리스트 △1996년 오스트레일리아증권협회(Securities Institue of Australia) 금융·투자 석자 △1997~2000년 서울대학교 한국어교육 프로그램 수료 △1997~2000년 UBS Warburg증권 서울 주식리서치팀 △2001~2005년 골드만삭스 서울사무소 주식리서치팀 △2007~현재 피치 한국 및 아시아태평양 기업평가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