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밀어준' 바이든…5차 중동전쟁 공포 커졌다
by김정남 기자
2023.10.19 07:07:36
바이든 "병원 피폭, 이스라엘 소행 아냐"
중동 분쟁 조정 대신 이스라엘 후원 택해
이란 등 반발…제5자 중동전쟁 확전 공포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중동을 전격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가자지구 병원 피폭으로 중동 국가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와중에도 중동 갈등을 막후 조정하는 대신 이스라엘을 확실히 밀어주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에 맞춰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와 관련한 인사와 단체에 대해 제재까지 전격 단행했다. 이에 따라 이란을 비롯한 중동 주요국들의 반발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한 뒤 텔아비브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AFP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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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한 뒤 텔아비브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우리의 정보로 볼 때 그것(가자지구 내 알 아흘리 아랍 병원 피폭 사건)은 가자지구 내 테러리스트 그룹이 잘못 발사한 로켓의 결과로 보인다”며 “무고한 팔레스타인 생명들이 희생된데 대해 애도한다”고 밝혔다.
요르단, 이집트 등 중동 국가들은 병원 폭발 책임을 이스라엘 탓으로 돌리며 바이든 대통령과의 4자 회담을 취소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소행은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 세력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발사 실패 때문이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 회담 전 언론에 뿌린 모두발언에서 “다른 쪽이 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고, 실제 기자회견에서는 ‘미국 국방부 데이터’를 근거로 이보다 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스라엘은 이에 발맞춰 이날 사진, 영상, 녹취록 등 관련 증거를 공개했다.
미국 국방부 고위인사는 뉴욕타임스(NYT)에 적외선 센서로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국은 이스라엘군쪽에서 로켓이 발사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확신한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병원 피폭은 현재까지 무력 충돌 국면에서 가장 중대한 변수로 꼽힌다. 이런 와중에 바이든 대통령이 반(反)이스라엘 진영의 소행이라고 사실상 단정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중동 방문길에 4자 회담을 통해 하마스를 고립시키는 쪽으로 분쟁을 조정하려 한 것으로 보이나, 예상치 못한 병원 피폭을 계기로 맹방인 이스라엘을 확실하게 밀어주는 쪽을 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하마스를 두고서는 “(하마스와 비교하면) 이슬람국가(IS·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합리적으로 보일 정도로 하마스는 잔학한 행위를 저질렀다”며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전체를 대변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고통만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지키는데 필요한 것들을 갖출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스라엘을 출발해 귀국길에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긴급 지원 등을 포함한 1000억달러(약 136조원) 규모의 안보 패키지 예산을 의회에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그가 예상보다 더 이스라엘 쪽으로 기운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적인 의미도 있어 보인다. 미국 정치권 내부의 초당적인 이스라엘 지지 분위기까지 감안해 내년 대선에서 일종의 승부수를 띄웠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에 맞춰 하마스 관련 인사·단체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를 포함해 수단과 터키, 알제리, 카타르 등을 기반으로 하는 9명의 개인과 1개 단체를 테러 연계 혐의로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하마스의 배후로 의심되는 이란과 연결된 금융 조력자, 가자지구 기반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 등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하마스의 잔혹한 학살에 대응해 빠르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충돌 국면에서 미국이 하마스를 겨냥해 새로운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중동 국가들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반미·반이스라엘 진영을 대표하는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가자지구 병원의 희생자들에게 떨어진 미국과 이스라엘 폭탄의 불길이 곧 시온주의자들을 집어삼킬 것”이라며 “전 세계 사람들은 미국을 이스라엘 정권이 저지르는 범죄의 공범으로 생각한다”고 맹비난했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이슬람 국가의 국제기구인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국은 이스라엘을 제재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석유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며 “동시에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이 전쟁에 개입할 경우 지난 1973년에 이은 제5차 중동전쟁 확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학살을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이날을 “적에 대한 분노의 날”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