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대포통장 개설 문턱 높였지만…대포폰은 규제 사각지대

by노희준 기자
2018.03.09 06:30:00

신원확인 허술, 온라인 개통 가능
해외거점 두고 발신번호 조작도
별정통신사 놓쳐 부처 엇박자
과기부 "수사당국이 단속해야"
경찰 "번호조작 차단 해법을"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대포통장과 대포폰, 두 숙주를 제거해야 합니다.”(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

보이스피싱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보이스피싱을 가능하게 하는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먼저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포폰은 피해자를 속이기 위한 통화 용도로, 대포통장은 피해자가 속아 입금한 돈을 빼내기 위해 필요하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없애면 보이스피싱 또한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건수는 2015년 5만7695건에서 2016년 4만5921건으로 감소했다.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에 힘입은 결과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다시 4만9948건으로 늘어나는 등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피해액 또한 2015년 2444억원에서 2016년 1924억원으로 줄었다가지난해 다시 2423억원으로 늘었다.

대포통장은 2015년 5만7299건에서 작년 4만5422건으로 3년새 1만1877건(21%)이 감소했다.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대포통장 차단에 나선 덕분이다. 은행들은 통장 개설시 본인확인은 물론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를 받는 등 통장 발급 요건을 강화했다. 또한 1년 이상의 장기 미사용계좌의 거래를 정지시키는 등 대포통장의 씨를 말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문제는 대포폰과 발신번호변작이다. 해외에서 070 등 인터넷전화로 전화를 걸면서 국내 전화인 것처럼 발신번호를 02 등으로 변경하는 게 번호변착이다. 단속을 피해 해외에 기반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은 번호변작으로 국내 전화로 위장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폰 규제는 통장발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술하다. 국내에서 보이스피싱을 할 때는 주로 미리 요금을 낸 선불폰으로, 해외에선 번호를 변작한 경우가 많아 추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포폰 관련 범죄는 증가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 325건이던 대포폰 관련 범죄 검거건수는 2016년 838건, 지난해 7월 현재 719건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접수된 발신번호변작 의심신고도 2015년 3482건에서 지난해 8월 5034건으로 늘었다. 이 중 실제 변작으로 확인된 건수도 194건에서 845건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별정통신사에 대한 상대적으로 느슨한 관리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별정통신사는 SKT, KT, LGT 등 기간통신사업자의 회선을 빌려 통신업을 하는 사업자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기간통신사업자와 달리 일정 요건만 갖춰 등록만 하면 돼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과거에는 노숙자, 대학생을 직접 통신사 대리점에 데려가 휴대폰을 개설하게 한 뒤 돈을 두고 대포폰을 확보하는 형태가 많았다.

그러나 대포폰 단속을 강화되자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신원확인 절차가 허술하고 온라인으로도 개통이 가능한 별정통신사의 선불휴대폰이 대포폰으로 많이 사용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통신사 위탁을 받아 판매하는 휴대폰 대리점이나 판매점은 신분확인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일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별정통신사는 지난해 7월 현재 572개가 등록해 운영 중이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75개사가 불법 번호변작서비스를 제공할 위험군으로 파악하고 있다.

별정통신사 관리는 부처간에 책임을 떠미는 분위기다. 과학정통부 관계자는 “법 시행과 단속 이후 대놓고 불법 번호변작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사라졌다”며 “숨어서 몰래 불법 번호변작을 하고 있는 곳은 수사당국이 단속해 적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은 단속을 통해 불법변호변작을 차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과학정통부가 휴대폰 개설 요건을 강화하거나 기술적으로 번호변작이 불가능하게 차단하는 등 해법을 내놔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성훈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보이스피싱은 경찰청, 금감원, 정보통신부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지난해 초 국무조정실 제안으로 대책을 논의하다 부처간 이견으로 대안이 없다고 결론이 난 바 있다”며 “번호변작 등에 대한 회선 대여 등을 엄하게 규제하는 데 정보통신부가 반대하면서 논란이 많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