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럽다
by윤종성 기자
2017.09.07 06:00:00
트럼프 美대통령 '다카 폐지'에
실리콘밸리 CEO 400명 '반기'
'묵시적 청탁'으로 실형받는 현실
韓기업인은 찍힐까 몸조심 급급
| ▲팀 쿡 애플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머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좌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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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실리콘밸리 주요 기업의 거물급 CEO(최고경영자)들이 불법체류 청년의 추방을 유예하는 현행 ‘다카’(DACA) 프로그램 폐지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반기’(反旗)를 들었다. 이들은 SNS를 통해 반대 목소리를 내거나,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청원에 직접 참여하는 등 권력에 맞서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젊은이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제공하고, 그들이 어두운 그림자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독려하며, 정부를 신뢰하도록 하려는 노력을 잔인하게 짓밟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팀 쿡 애플 CEO도 SNS와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 등으로 “애플의 동료들 가운데 250명 가량이 ‘드리머’ 제도를 통해 체류하면서 입사한 사람들”이라며 “애플은 ‘꿈꾸는 사람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의회 지도자들과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드리머는 우리의 이웃이며, 우리의 친구이며, 미국은 그들의 고국”이라고 했고,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드리머는 국가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다카 프로그램 폐지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페이스북과 애플 등의 CEO 400여 명은 ‘다카’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청원에도 참여키로 했다.
미국 기업인들의 ‘집단 반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초 트럼프 대통령이 무슬림 테러 위험 국가 국민에게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을 때나, 성전환자의 군 복무 전면 금지 계획을 밝혔을 때도 소신 발언을 쏟아냈다.
이런 미국 기업인들의 ‘도발’이 한국 기업인들에겐 부럽기만 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절대 권력에 대한 반기는 불경죄(不敬罪)로 이어진다”며 정권 초반일수록 납작 엎드려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 기업들은 대통령의 불합리한 지시에도 입도 벙긋 못하고 있다. 권력에 의해 ‘비협조적’이라고 낙인 찍히면 자칫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걸 아타깝게 여기는 기업인들이 많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과 달리 정권의 뜻을 거스르면서 기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이 뭔가를 요구하면 들어주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권에 밉보이면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 등 무차별 ‘사정(司正)의 칼날’을 받아내야 하는 기업들은 권력 앞에 약자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권력자에게 뒤탈 걱정 없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미국 기업인이 부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