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영환 기자
2016.03.09 06:00:35
필리버스터 참관 원하는 지역주민과 소통할 수 있어
바삐 돌아가는 국회 일정 때문에 유세 올인 못해 어려움
[글·사진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지난 1일 오전 9시 40분 국회 본청 후문. 민병두(57)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감색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너댓의 일행과 함께 들어섰다. 당시 8일째 진행 중이던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때문이었다.
민 의원은 이번 필리버스터에 토론자로 나서지는 않았다. 이날 국회를 찾은 것은 필리버스터 방청을 희망한 서울 동대문구 주민 4명을 본회의장에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민 의원과 함께 24세 여대생 2명과 한 쌍의 부녀가 나란히 입장했다.
이들 4명은 “직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원이 마중 나와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민 의원의 안내로 본회의장을 찾기 전에 본청도 둘러보고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사진도 찍었다. 민 의원은 급하게 나온 듯 오른쪽 바짓단이 양말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도우미 역할을 수행했다.
민 의원은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 수정안을 관철하는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도 국민들에게 테러방지법의 문제점과 우리의 의견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오른쪽 바짓단을 빼면서 다시 지역구로 향하는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총선을 50여일 앞두고 9일간 진행된 필리버스터가 야권 의원들에게 효율적인 간접 선거 운동의 장이 됐다. 먼 발치에서 의원들의 연설을 들을 것으로 기대했던 지역주민들은 실제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실정치 안 쪽으로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었다. 52년만의 필리버스터가 낳은 새로운 총선 풍경이다.
주민들을 안내하고 다시 지역구로 돌아가는 승합차 안에서 민 의원은 기자에게 SNS를 보여줬다. 다양한 의견이 게재돼 있었다. 민 의원은 “선거까지 블로그 순위를 2~3만등으로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더민주는 의원들끼리 SNS에서 상호간 연결해 세를 확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민 의원은 오전 10시30분부터 전농 로터리 시장을 찾아 유권자들을 만났다. 대체로 하루에 소화하는 일정은 30~40개에 달한다. 시·구의원과 나눠도 의원 혼자 소화하는 일정이 20개 정도 된다. 이날도 필리버스터로 국회를 두 차례 왔다갔다 하는 사이 시장과 청량리역 일대를 빠짐없이 돌았다. 사무실로 복귀하다 배드민턴 동호회로부터 연락을 받고 급히 운전대를 돌리기도 했다.
이렇게 하루에 소화하는 명함만 1000~2000장 정도. 그래도 17만6446명의 지역구민을 떠올리면 선거 운동 기간은 너무도 짧다. 현역 의원인 민 의원은 그나마 낫다. 19대 국회 의정활동 정리한 의정보고서를 42만부나 배포했다. 지역구민이 평균 2.5부 정도 받아볼 수 있는 양이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진태종(54)씨는 “지난 18대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도 ‘감사하다’며 인사를 돌았을 때 감동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거리 유세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민의원은 시민들이 버린 본인의 명함을 직접 주우며 “명함이 너무 버려져 있으면 주워줘야 한다. 안 그러면 버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따라 버린다”라고 말했다.
오후 5시. 민 의원은 옷을 챙겨입고 배드민턴 동호회에 인사를 고했다. 오후 6시30분 필리버스터 중단에 따른 의원총회가 잡혔다. 그는 “지역구와 국회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현역의원도 고충이 있다”며 승합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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