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업계의 TSMC…삼양패키징 아셉틱 공장 가보니

by하지나 기자
2024.07.03 06:10:00

아셉틱 6호기 지난해 7월 준공…100% 풀가동 중
무균 충전 방식…맛과 풍미 그대로, 유통기한 길어
음료개발팀 갖춰…OEM 뿐 아니라 ODM 최적화
추가 증설 공장부지 확보…10호기 이상 증설 전망

[진천군(충북)=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아셉틱 생산 방식이 없었다면 페트병에 담긴 커피와 곡물차는 먹기 어려웠을 겁니다.”

지난 28일 방문한 충북 진천군 소재 삼양패키징 광혜원 공장에는 지난해 7월 준공을 완료한 아셉틱 설비 6호기가 100% 풀가동 중이었다. 삼양패키징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아셉틱 무균충전 시스템(Aseptic Filling System)은 음료 생산의 모든 공정을 무균환경에서 운영하는 첨단 음료 충전시스템이다. 기존에는 유통 중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고온에서 오랜 시간 살균하고 냉장상태로 유통했다면, 삼양패키징의 아셉틱 무균충전은 초고온 순간멸균으로 음료가 지닌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고 맛과 풍미가 그대로 보존된 음료를 제공할 수 있다. 위생적이면서도 유통기한도 상대적으로 길다. 커피나 액상차 음료의 경우 보존료를 첨부하지 않아도 상온에서 12개월을 보관할 수 있다.

아셉틱 6호기 공장에 들어서니 모든 것이 자동화다.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이동한 제품에 로봇팔이 라벨을 덧씌우고, 제품 단위로 랩핑하고 박스로 포장해 창고로 옮기는 모든 과정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이뤄지고 있다. 무인운반차(AVG)들만 바삐 움직일 뿐 근로자를 찾기 어렵다. 포장·검수 뿐만 아니라 음료 추출·배합, PET 성형, 살균 세척, 음료 충전 등 전 과정에 걸쳐 근무하는 직원은 총 8명에 불과하다.

음료수 PET병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통과하고 있다(사진=삼양패키징 제공)
삼양패키징 아셉틱 공정의 핵심 설비인 아셉틱 챔버로 향했다. 시험관 모양의 프리폼을 100~120도에 달하는 온도로 가열해 병 형태의 금속 금형에 장착한 뒤 블로우 머신으로 공기를 주입해 원하는 모양의 페트병을 만든다. 이후 고객사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음료를 채워넣는데 눈으로 쫓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속도다. 분당 662개의 음료수가 만들어진다. 해당 설비의 연간 생산능력은 3억4000만병으로 단일 라인 기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이 무균 상태로 이뤄진다. 또한 기존 고온 충전 방식의 경우 액상차 기준 PET병을 98도 고온으로 살균한 뒤 음료를 충전하고 40도 이하로 냉각하는데, 겨울에는 1시간 정도 소요됐다. 그 과정에서 영양소가 파괴되거나 향이나 맛이 변질될 우려가 컸다. 반면 아셉틱 방식의 경우 PET병을 135도 이상 순간 살균을 하고, 25도 급속 냉각 후 음료를 채운다. 이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5~7분 정도다.

김광남 아셉틱생산PU 생산2팀 팀장은 “아셉틱 챔버에 센서가 있어서 문이 열리면 무균 브레이크라고 경고음이 울린다”면서 “이후 생산 재개에 들어가기까지 무균 환경을 만드는데 4~5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삼양패키징은 1979년 국내 최초 PET용기를 상업화한 이래 음료, 식품,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PET용기를 제조, 판매하고 있으며 2015년 아셉시스글로벌과 합병을 통해 본격적으로 아셉틱 사업에 진출했다. 아셉틱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이미 PET용기 매출을 넘어선 지 오래다. 삼양패키징은 아셉틱 시장 점유율 70%로, 압도적 국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양패키징의 가장 큰 경쟁력은 음료개발팀과 아셉틱 설비를 200분의 1로 축소한 파일럿 설비이다. 이는 삼양패키징이 OEM(주문자 위탁 생산) 뿐만 아니라 ODM(제조업자 개발 생산) 사업자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삼양패키징 광혜원 공장 전경(사진=삼양패키징 제공)
지난해 삼양패키징은 69개사 292개 제품을 생산했다. 올해는 80개사 350개 제품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현근 삼양패키징 아셉틱생산PU장은 “매년 200건 이상의 신제품 개발을 하고 이 중 30~50건 정도 신제품이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상업화되지 않은 음료 레시피가 상당히 쌓여있다”면서 “이를 통해 고객사에서 원하는 제품이 있을 경우 경쟁사 대비 빠르게 대응할 수 있으며, 우리가 가진 레시피를 역제안해 제품 생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삼양패키징 이현근 아셉틱생산PU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삼양패키징 제공)
파일럿 설비 역시 고객 맞춤형 생산에 최적화됐다. 파일럿 설비를 통해 샘플을 만들고 고객사 승인이 떨어지면 생산 체제로 돌입하는 방식이다. 아셉틱 공장 5호기의 경우 아예 다품종 소량 생산을 위해 소형 라인을 도입했다. 대형 라인의 경우 40톤(t) 규모의 음료 배합 탱크가 들어간다면, 5호기는 12t 규모의 음료 배합 탱크가 2대씩 들어가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벤처·스타트업까지 모두 대응 가능하다. 말그대로 고객이 원하는 모든 음료수를 만들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이 아셉틱생산PU장은 “파일럿 설비는 영업일 기준 80% 가동하고 있다”며 “파일럿 설비가 도입된 이후 고객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현재 삼양패키징은 추가 설비 구축을 고려해 인근 공장 부지를 매입하고 있다. 이 아셉틱생산PU장은 “아셉틱 시장의 경우 차류, 커피, 탄산 뿐만 아니라 단백질 음료 등 기능성 음료까지 더욱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3~4년 단위로 증설을 진행하고 있는데 향후 10호기 이상까지 증설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