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사건' 두고 공수처와 기싸움[검찰 왜그래]
by박정수 기자
2024.01.13 09:09:09
''감사원 간부 뇌물 의혹'' 놓고 검찰 vs 공수처
검찰→공수처→검찰→공수처…서로 공지 내며 충돌
‘공수처 1호 기소’ 김형준 前검사 사건…1·2심 무죄
"무리한 기소…공수처 수준 드러난 사건"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감사원 간부의 뇌물 혐의 사건을 두고 검찰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초유의 기싸움을 벌였습니다. 검찰은 공수처 수사가 부실하다며 사건을 돌려보냈고, 공수처는 법적 근거가 없는 조치라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더구나 서로 두 차례나 공지를 내며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과 공수처 간 충돌은 처음도 아니기 때문에 예견된 갈등이라고 봅니다.
공수처 출범 1년 차인 지난 2021년 유보부 이첩이 가능한지를 두고 검찰과 공수처 간 갈등을 빚은 바 있습니다. 공수처가 검찰에 재이첩한 사건의 공소권이 공수처에 있는지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고, 검찰이 인지한 고위공직자 비위를 어느 시점에 공수처에 알려야 하는지를 놓고도 부딪힌 바 있습니다.
현행법상 공수처는 고위공무원 가운데 대법원장과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와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등에 대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외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는 수사권만 있어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검찰에 기소를 요구해야 합니다.
결국 허술한 입법으로 갈등을 벌인 것입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공수처는 15억대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 감사원 3급 간부 등을 재판에 넘겨달라고 지난해 11월 검찰에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2일 검찰은 “공수처 수사 결과만으로는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에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 수집과 관련 법리에 대한 검토가 충분하지 않다”며 이를 공수처에 다시 이송했습니다.
공수처의 법률적 지위를 고려하면 검찰이 별도로 검토하기보다 공수처에서 추가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 한다는 검찰 측 판단입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1시간 남짓 만에 곧바로 “어떠한 사전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법률적 근거도 없는 조치를 한 검찰 결정에 유감”이라며 사건 접수를 거부했습니다. 공수처는 기존에 했던 대로 공소제기를 요구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자체 보강수사를 거쳐 기소 또는 불기소 처분을 하라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또다시 입장을 내 “공수처가 해당 사건 수사 중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기각됐음에도 별다른 보강수사 없이 사건을 송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수사준칙 제18조 제2항에 따라 공수처에 이송한 것이라며 법률적인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공수처는 또 1시간 남짓 만에 “구속영장 기각 후 즉시 공여자 등에 대한 소환조사를 네 차례 실시하는 등 보강수사를 하고 검찰에 공소제기를 요구했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검찰이 이송 근거로 밝힌 수사준칙은 검찰과 사법경찰관의 업무 처리에 관한 것으로 공수처와의 업무 처리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 검찰과 공수처 간 갈등도 보완수사에 대한 규정이 없는 허술한 법 때문입니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두 기관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공수처의 무리한 기소도 문제라고 합니다. ‘1호 기소’ 사건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혐의 항소심 결과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1부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부장검사의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함께 기소된 박 모 변호사도 무죄를 받아 1심 판결이 유지됐습니다.
김 전 부장검사는 2015년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박 변호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처리와 관련해 수사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2016년 3~4월 두 차례에 걸쳐 93만5000원 상당의 향응을, 2016년 7월 1000만원 상당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를 받았습니다.
김 전 부장검사 사건은 중·고교 동창인 김모씨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는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2016년 처음 불거졌습니다. 2016년 7월 김 전 부장검사가 받은 1000만원도 ‘스폰서’ 김씨에게 줄 돈을 박 변호사가 빌려준 것입니다.
검찰은 당시 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수사를 하면서 뇌물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19년 김씨가 경찰에 박 변호사의 뇌물 의혹을 고발하며 수사가 재개됐고 검찰은 공수처법에 따라 이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했습니다.
2022년 공수처는 김 전 부장검사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재판에 넘기면서 ‘1호 기소’ 사건이 됐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공수처가 제기한 공소사실을 모두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2심 재판부 판단도 같았습니다.
특히 2016년 8월 김 전 부장검사와 박 변호사가 반얀트리 호텔에서 만나 변제했다는 주장에 출차 기록, 예금인출 기록 등이 남아 있어 통상 은밀하게 이뤄지는 뇌물 전달방식과는 차이가 있다며 재판부는 대가성 뇌물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술자리 향응 부분도 김 전 부장검사가 박 변호사에게 향응을 제공하기도 해 일방적이지 않았다며 검사 측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들이 직무 관련 금품을 인식해 이를 수수·교부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결국 1000만원은 빌렸다가 갚았고, 술자리 향응은 친해서 서로 간에 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본 것입니다.
선고 직후 김 전 부장검사는 “2016년 대검 특별수사팀에서 무혐의로 마친 것을 재탕한 억지 기소였음이 더욱 명백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공수처는 “판결문 내용을 받아본 뒤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판결을 놓고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 발족 당시 실적이 없다 보니 무리한 기소를 한 것”이라며 “공정하게 판단을 내렸다기보다 공수처가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 기소한 것이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무죄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수처 수준이 드러나는 사건”이라며 “상고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 것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김 전 부장검사와 박 변호사 친분을 이유로 공수처가 기소한 사항”이라며 “공수처의 무리한 수사였고, 법리적인 해석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