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 아닌 '지금'의 국악, SNS로 젊은 관객 만나 '시너지'

by장병호 기자
2020.08.04 05:02:30

[힙한 국악이 뜬다]①
국악,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타 장르 음악 만나 다양한 시도
대중과 호흡하고픈 절실함의 결과
"과거가 아닌 동시대 표현하는 수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국악이 ‘힙’해지고 있다. ‘한복을 입고 하는 느리고 지루한 옛날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점프수트를 입은 소리꾼들(이날치)이 래퍼처럼 무대를 사로잡는가 하면, 밴드와 만난 굿(무가·巫歌) 음악(추다혜차지스)이 전에 없던 신명을 뽐낸다. 아이돌 가수(BTS 슈가)도 조선시대 궁중음악을 샘플링해 음악을 만들 정도다. 여기에 SNS를 중심으로 새로운 취향을 찾는 젊은 세대들의 문화 트렌드가 더해지면서 국악이 ‘옛것’이 아닌 ‘지금’의 음악으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

국립극장 ‘2020 여우락(樂) 페스티벌’ 중 이날치 ‘들썩들썩 수궁가’ 공연 장면(사진=국립극장).


◇이날치부터 BTS 슈가까지…국악의 ‘무한변신’

관심의 중심에는 밴드 이날치가 있다. 민요 록 밴드 씽씽을 이끌었던 장영규(베이스), 이철희(드럼)와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 정중엽(베이스)이 네 명의 소리꾼 권송희, 신유진, 이나래, 안이호와 함께 지난해 결성한 밴드다. 최근 첫 정규앨범 ‘수궁가’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련된 의상과 독특한 공연 영상으로 젊은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큰 인기다. 국립극장 ‘2020 여우락(樂) 페스티벌’을 통해 지난달 11일 진행한 온라인 공연은 네이버TV 2145회, 유튜브 1927회 등 총 4072회의 조회수로 국악 공연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LP로만 발매한 ‘수궁가’는 품절 사태 속에 최근 국내 유일의 인디음악 전문차트 ‘K-인디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도 국악 열풍에 힘을 보태고 있다. ‘어거스트 디’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솔로 싱글 ‘대취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보유자 정재국 명인의 연주를 샘플링했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공식적인 행진음악인 대취타를 모티브로 삼은 곡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서도 국악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BTS 슈가가 발표한 솔로 싱글 ‘대취타’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 1억뷰 돌파 이미지(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편견 없는 젊은 국악인들의 다양한 시도



이러한 국악의 변신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잠비나이, 블랙스트링, 씽씽, 박지하 등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서울아트마켓(PAMS)을 통해 해외 월드뮤직 시장에 소개돼 주목을 받았다. 이후 소울소스 밋츠(meets) 김율희, 고래야, 악단광칠, 추다혜차지스 등 국악과 다른 음악 장르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왕성하게 이어지고 있다.

현경채 국악평론가는 “정규 교과 과정에 국악이 들어가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국악이 옛날 음악이라는 편견이 사라지게 된 것 같다”며 “젊은 국악인들이 선배 세대에 비해 다른 음악 장르를 보다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도 최근 국악 유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진 국악 창작자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늘어난 점도 국악의 변신을 견인했다. 국악방송 ‘21세기 우리음악프로젝트’, 정동극장 ‘청춘만발’, 서울남산국악당 ‘젊은국악 단장’ 등을 통해 전통을 자유로운 창작의 도구로 이용하는 젊은 국악인을 배출했다. 블랙스트링의 음악감독이자 거문고 명인인 허윤정 서울대 국악과 교수는 “젊은 국악인들은 이제 국악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울소스 밋츠 김율희(사진=국립국악원).


◇SNS도 큰 역할…대중과 공감대 유지해야

최근 국악 열풍에서 주목할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소셜 미디어다. 그동안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국악은 SNS와 유튜브를 통해 대중과의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씽씽의 경우 유튜브에 올라온 미국 공영방송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이날치 또한 현대무용 단체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함께 한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새로운 문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 세대들의 취향과도 맞아떨어진 부분이 있다. 소리꾼 이희문을 비롯해 이날치, 추다혜차지스 등은 인디 클럽에서 주로 공연하며 젊은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들이 공연 정보를 공유하는 통로 또한 SNS다. 허 교수는 “지금 국악이 이렇게 새로운 실험들을 열심히 하는 것은 그만큼 현재와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유행에는 유효기간이 있기 마련이다. 국악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깊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국악 전문 기획사 프로덕션 고금의 조종훈 대표는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가사를 고민하고 음악적 노하우가 있는 아티스트와 협업을 계속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