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 "청각장애 극복 노력형 천재, 인간 베토벤을 소개합니다"

by이윤정 기자
2020.03.17 06:00:00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출간
''코로나19''로 베토벤 콘서트 투어 취소
"베토벤과 내 인생 맞춰보고 삶 돌아보길"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위대한 음악가로서뿐만 아니라 불우한 가정환경과 청각장애를 극복한 한 인간으로서 베토벤의 삶은 너무나 대단하다. 베토벤은 나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는 존재다.”

‘베토벤 스토커’를 자처하는 피아니스트 임현정(34)이 인간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조명했다. 최근 출간한 책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원앤원북스)를 통해서다. 올해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의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음악들을 음악가의 시선으로 흥미롭게 소개했다.

임현정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원래는 책 출간과 함께 ‘베토벤 콘서트 투어’를 할 예정이었는데,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로 인해 3월부터 8월까지의 모든 공연이 취소됐다”며 “대신 8월 19일 ‘베토벤 콘체르토 리사이틀’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고 전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잘 알려지지 않은 베토벤의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등도 책에 소개했다”며 “파격적인 화성으로 시작하는 곡이라 당시에 비판을 받으면서도 베토벤은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했다”고 강조했다(사진=원앤원북스).


3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임현정은 중학교 1학년 때 홀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파리 국립음악원에 최연소로 입학해 4년 과정을 3년 만에 마치고 최연소이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2009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연습곡 전곡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택한 ‘왕벌의 비행’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유튜브에 올렸다가 화제가 되면서 ‘유튜브 스타’가 됐다. EMI를 통해 발매된 임현정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은 뉴욕 타임스, BBC 뮤직, 텔레그래프에서 호평을 받았다. 한국인 연주자 중 처음으로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임현정은 베토벤의 친필 편지에서부터 온갖 평전과 연구서 등 3000여 쪽에 달하는 자료들을 독파해낸 자칭 ‘베토벤 스토커’다. ‘악성 음악가’라는 인식이 각인돼 있지만, ‘인간 베토벤’을 알면 그의 작품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피아노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베토벤이라는 한 인간이 내 삶 전반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줬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베토벤의 개인적인 선택과 영성, 연애관 등 모든 것들이 인생에서의 선택에 많은 영향을 줬다. 자신의 음악성과 재능을 당당하게 표출하는 자존감을 피아니스트로서 본받고 싶었다.”

이번 책에는 베토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해당 음악을 들어볼 수 있도록 페이지 하단에 큐알 코드를 삽입했다. 큐알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그가 직접 연주한 베토벤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도록 했다. 그는 “9년 전에 해놨던 베토벤 전집 녹음을 편집해서 실었다”며 “출판사 측의 아이디어인데 독자들이 보다 쉽게 베토벤의 음악을 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피아노는 그와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멋진 다리가 돼 주었다. 책에는 그의 유학시절 일화가 나온다. 어린 나이에 홀로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그에게 또래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자신의 눈을 찢으며 인종차별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 시간에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쇼팽의 ‘에튀드 작품 10 제5번’을 연주하게 됐다. 연주 후 아이들이 찬사를 보낸 것은 물론 쉬는 시간에 다정하게 말도 건넸다.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음악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베토벤은 음악가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청각 장애를 딛고 일어나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것으로 유명하다. 사회적 계급으로 인한 좌절감 등 정서적인 문제를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위대한 음악들을 후대에 남겼다.

“베토벤은 처음부터 천재가 아니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모차르트는 유복한 가정에서 비교적 평안하게 음악 공부를 했다. 반면 베토벤은 알코올에 중독된 아버지의 폭력 아래서 피아노를 배웠고, 청각장애 조차도 극복했다. 모든 삶의 고통들을 예술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클래식 공연뿐 아니라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당분간은 페이스북 라이브방송 등 온라인을 통해 팬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임현정은 “베토벤을 역사적인 인물만이 아닌, 심장이 뛰었던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바라보면 좋겠다”며 “책을 통해 그와 자신의 인생을 맞춰보면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연주 모습(사진=원앤원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