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육아 결심했지만 똥기저귀 가는데 3년 걸렸죠"
by이슬기 기자
2017.12.22 06:30:00
[지구촌 육아전쟁 탐방기 일본편]
안도 테츠야 NPO 법인 ''파더링재팬'' 대표 인터뷰
안도 대표 "아빠 육아 당연해져 10년 후 단체 해산이 꿈"
| 지난 9월 25일 오전 11시쯤 일본 도쿄의 한 카페에서 안도 테츠야 ‘파더링재팬’ 대표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이슬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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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5일 오전 11시쯤 일본 도쿄의 한 카페에서 안도 테츠야 ‘파더링재팬’ 대표가 책자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사진=이슬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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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본)=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일본의 저출산 정책이 수십 년 동안 실패한 건 아빠육아를 외면한 탓입니다.”
안도 테츠야(54) NPO법인 ‘파더링재팬(Fathering Japan)’ 대표는 일본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실패한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이처럼 잘라 말했다.
안도 대표는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보육원을 늘리고 출산수당 등 지원제도를 만들어 봤자,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한 공염불이라고 했다. 가부장제 문화가 뿌리깊은 일본에서 10년 넘게 아빠육아 확산을 위해 노력해온 온 안도 대표를 만나 일본의 육아현실과 해법을 들어봤다.
파더링재팬은 안도 대표가 ‘아빠가 육아를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아래 2006년 설립한 비영리 공익단체(Non Profit Organization)다. ‘아빠는 일·엄마는 육아’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일본 사회에 ‘이쿠멘(育メン·육아하는 아빠를 뜻하는 신조어)’을 유행시키는데 일조한 곳으로 유명하다.
안도 대표는 “IT기업 부장으로 일할 때 둘째 아이가 5개월이고 큰 애가 3살이었다. 하루에 12시간씩, 바쁘면 주말에도 일했고 그걸 당연히 여겼다”라며 “육아에 지친 아내와 싸움이 잦아졌고 결국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고백했다.
아내가 짧은 가출 끝에 돌아오긴 했지만 충격을 받은 안도 대표는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파더링재팬을 설립했다.
안도 대표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아빠들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런 아빠들을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단체를 세웠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아빠육아 문제를 고민해온 안도 대표도 진짜 ‘이쿠멘’이 되기까진 꼬박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안도 대표는 “오줌 싼 기저귀는 갈 수 있겠는데 똥 기저귀는 도저히 못 갈겠더라”고 웃었다.
안도 대표는 “육아하는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내 안의 가부장 OS(Operating System·컴퓨터 운영시스템)를 바꾸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2016년 기준 일본의 남성육아휴직률은 3.16%에 불과하다. 아빠 100명 중 3명만 육아휴직을 한다는 얘기다. 이마저도 일본이 남성육아휴직률을 조사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후생노동청은 2020년까지 남성육아휴직률을 13%까지 올리겠다는 목표지만 달성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파더링재팬에서는 부부 육아휴직 기간의 일부를 아빠가 의무적으로 쓰게 하는 ‘파파쿼터제’ 도입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사회나 회사 분위기상 아빠 육아휴직이 쉽지 않으니 정부가 나서 강제로라도 시키라는 거다.
안도 대표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면 월급은 줄고 승진은 막힌다. 누가 쓰겠냐”며 “정부는 육아제도나 정책을 만들 때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시간 근로가 만연한 일본의 기업은 아빠를 하루종일 직장에 묶어놓는다. 일본 정부도 내각관방에 ‘일하는 방식 개혁 실현 추진실(動き方改革實現推進室)’을 설치하는 등 장시간 근로환경 개선에 나섰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실은 없는 상태다. 일본의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2000시간이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연평균 총 근로시간은 1766시간이다.
| 파더링재팬이 기업 경영자 등을 상대로 실시하고 있는 프로젝트 ‘이쿠보스’에 가입한 기업들. 지난 8월 기준으로 160사가 ‘이쿠보스’ 프로젝트에 가입했다.(사진=파더링재팬 홈페이지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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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링재팬에서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여 직원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이쿠보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쿠보스’는 ‘육아’와 ‘보스(Boss)’를 합한 조어로 남성 육아를 지원하는 상사를 뜻한다.
지난 8월 기준으로 ‘이쿠보스 기업동맹’에 가맹한 기업은 총 160사로 이중엔 소니, 소프트뱅크 등 한국인들이 알 만한 큰 기업도 있다.
일본 기업들이 이쿠보스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질적인 저출산·고령화로 청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서다.
안도 대표는 “청년인구가 줄면서 일손이 부족해진 기업들이 우수한 청년을 유치하기 위해선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쿠보스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은 기업도 있다. 일본의 제과업체 가루비(Calbee)가 대표적이다.
마츠모토 아키라 가루비 회장은 “장시간 노동이라는 나쁜 관행이 일본을 망치고 있다”며 직원들의 장시간 근로를 금지한 CEO다.
마츠모토 회장이 초등학생 자녀가 2명 있는 여성 임원에게 “오후 4시엔 퇴근하라”고 지시한 일은 일본 내에서 유명한 일화다. 장시간근로 관행을 철폐했지만 가루비 실적은 고공행진 중이다. 2009년 마츠모토 회장 취임 이후 가루비는 8년째 영업이익 증가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안도 대표는“아직 일본 정부는 애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저출산 해소를 위해서는 아빠육아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움직이려 하질 않는다”고 토로한다.
안도 대표의 꿈은 일본이 아빠육아가 당연한 나라가 되서 ‘파더링재팬’을 해산시키는 것이다.
‘아빠육아’가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아빠육아를 위한 정책은 잘 마련돼 있지만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장시간 근로가 만연한 기업문화 탓에 좋은 정책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애는 엄마가 보는 거지 아빠는 일이나 하라”며 일찍 퇴근하는 직원을 꾸짖는 상사는 일본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넘쳐난다. 우리와 닮은 꼴인 일본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아빠육아 현실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