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대책 한달]설익은 열매 먹고 배탈난 대한민국..너도나도 '불만'
by성문재 기자
2017.08.31 05:30:01
'다주택자=투기꾼'에 뿔났다
양도소득세 중과 대책 내놨지만
버티기 작전에 시장만 얼어붙어
내집마련 멀어진 맞벌이 부부
연 소득 7000만원 기준 걸려
LTV·DTI 완화 혜택 못받아
현실성 없는 기준에 실효성↓
[이데일리 성문재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 85일만에 내놓은 8·2 부동산 대책은 과열 양상을 보이던 서울·수도권 주택시장을 어느 정도 잠재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장 참가자들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대출 한도가 줄면서 다주택자는 물론 실수요자들도 높아진 주택 구입 문턱을 실감하고 있고, 주택 보유자가 앞으로 내게 될 세금은 늘어나게 됐다. 그렇다고 무주택자들의 내집 마련 꿈이 성큼 다가온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출 규제와 청약 가점제 강화로 내집 장만이 더 어렵게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매수 심리 위축으로 주택 거래가 끊기면서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당장 줄폐업 위기에 몰렸다. 국가 경제의 한축을 담당하는 건설업계도 연초에 세웠던 분양 사업계획을 새로 짜야 할 처지다.
정부는 8·2 대책을 발표하면서 다주택자들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시점을 내년 4월 이후로 정해 약 8개월간 주택 처분 기회를 주긴 했다. 하지만 고강도 대책에 당장 주택 매수 심리가 얼어붙어 제값에 팔기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상당수의 다주택자들은 일단 그대로 집을 보유하면서 다시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버티겠다는 분위기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공인중개사는 “아파트를 살 사람이 없으면 마음대로 팔 수도 없다”며 “양도세는 거래 때 부과되는 세금이기 때문에 매도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느냐면서 버티기에 들어간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대출 규제 강화로 다주택자뿐 아니라 1주택 실수요자들도 집을 추가로 매입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 발표로 투기꾼으로 몰린 선의의 다주택자들이 적지 않다”며 “정부가 전체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집값 안정이라는 편협한 목표로만 부동산 정책을 펼치면 서민들까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호언장담에도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불만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8·2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 내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일괄 40%로 제한되지만 서민과 실수요자에게는 10%포인트 완화 혜택이 있다.
그러나 정작 서울에서 집을 구매할 능력이 있는 맞벌이 직장인 무주택 부부들은 대부분 부부 합산 연소득 7000만원 기준에 걸려 LTV·DTI 완화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현실적이지 않은 기준 제시로 실효성이 반감된 것이다. 무주택자이고 생애 첫 주택 구입자이라면 대출 기회를 충분히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담보 가치가 확실한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LTV를 절반 이하로 제한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 소지도 있다.
40대 직장인 K씨는 “내년 초등학교 입학하는 딸의 교육을 위해 현재 살던 집을 팔고 대출을 좀 더 보태 좋은 학군으로 이사가려 준비하고 있었다”며 “집을 내놔도 팔릴 기미가 없고 대출 한도도 줄어 이사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청약제도 개편으로 아파트 청약 당첨자 선정 기준에 가점제 비율이 확대됐지만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는 젊은 부부와 1~2인 가구의 청약 당첨 기회가 사라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 마련 지원책으로 전용면적 85㎡ 이하 민영주택의 10%와 국민주택의 15%를 특별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8·2 대책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8월 한 달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지냈다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8·2 대책 발표 직후 지난 7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95.7로 떨어졌고 이후 14일 81.2, 21일 72.5로 빠르게 하락했다. 100 이하는 매도 우위 상황을 뜻한다. 매수심리가 위축되면서 물건을 찾는 문의는 급감했고 거래는 얼어붙었다. 특히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입주권 전매) 제한으로 재건축 단지가 몰려 있는 지역의 경우 거래 가능한 부동산 물건 자체가 없어 공인중개사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철거 단계인 재건축 단지는 전월세 거래조차 불가능하다. 정부는 올 하반기 법 개정을 통해 재개발 사업장의 입주권 전매도 제한할 계획인 만큼 앞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대거 진행될 서울에서 중개업소들의 줄폐업이 우려된다. 반포동 D공인 관계자는 요즘 현장 분위기가 어떻냐는 질문에 “몰라서 묻냐. 우울한 얘기는 하지말자”며 입을 닫았다.
건설업계도 죽을 맛이다. 수년간 해외 사업에서 입은 손실을 국내 주택시장에서 만회하며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고 있는 대형 건설사들은 고강도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시장이 다시 침체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재건축사업이 지지부진하면 일감 수주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청약제도 개편과 매수 심리 위축 등이 겹치면서 ‘래미안 강남 포레스트’(개포시영 재건축 단지)나 ‘신반포 센트럴 자이’(신반포 한신6차 재건축 단지) 등 주목받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들의 분양 일정이 늦춰지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부동산 대책 발표로 분양시장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며 “기존 사업계획과 전략 등을 재검토해 시장 변화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