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잘했어…" 마지막 지휘봉, 정명훈 떠났다

by김미경 기자
2015.12.31 07:11:12

30일 서울시향과의 10년 뒤로한 채 막공
공연 직후 눈물 참으며 단원 일일이 악수
2300여명 관객 환호와 기립박수로 배웅
최흥식 대표 "참담하다…말로 표현 못해"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손을 흔들며 공연장을 떠나고 있다(사진=김미경기자).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해피 뉴 이어, 해피 뉴 이어 에브리바디. 생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정명훈(62)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서울시향에서의 마지막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65분간 관객에게 선사한 음악은 매 순간 깊고 강렬했지만 마지막 남긴 말은 길지 않았다.

정 감독은 30일 밤 서울시향과의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공연장을 나서면서 취재진에게 “(서울시향이) 계속 잘하기를 바란다”며 비교적 밝은 모습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날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정 예술감독과 서울시향의 마지막 공연이 됐다.

당초 예술감독 재계약과 관계없이 내년 예정된 공연을 모두 소화할 예정이던 정 감독은 서울시향 이사회에서의 재계약 보류 및 경찰 수사과정에 따른 실망감 등으로 사임 의사를 굳히면서 이날 공연은 고별무대가 됐다.

자유와 인권을 상징하는 비둘기와 손모양의 스티커
이날 단원들은 ‘자유’와 ‘인권’을 상징하는 비둘기와 손 모양의 스티커를 연주복에 부착하고 연주했다. 공연 내내 정 감독과 서울시향 단원은 음악에만 집중했다. 2300석을 가득 채운 관객 역시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서울시향의 연주에 귀 기울였고 연주가 끝나자 환호와 함께 모두 일어나 10분 넘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정 감독을 배웅했다.



연주가 끝난 뒤 정 감독은 무대 위 85명의 단원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많은 단원이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고개를 떨궜고, 일부 관객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공연은 연초 일찌감치 매진됐지만 콘서트홀 로비에는 화면으로라도 정 감독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관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서울시향의 오랜 팬이라는 관객 장현진(42) 씨는 “일찌감치 예매했는데 이 공연이 마지막 지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며 “정 감독 같은 분이 떠나선 안 된다. 우리는 큰별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공연을 20여분 앞두고 만난 최흥식 서울시향 대표도 “참담하다. 무슨 할 말이 있겠나”며 “단원들은 더욱 침통해한다. 어제 송년회가 환송회가 돼버렸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감독직으로 다시 돌아올 여지는 전혀 없느냐는 질문에 최 대표는 “지금 상황에서는 설득의 여지는 없는 거 같다. 많이 지쳐 있기도 하고 이미 마음을 굳혔다”고 침통해 했다.

이날 정 감독은 공연을 마친 뒤 공연장을 나서는 길에 몰려든 취재진이 마지막 무대에 대한 심경을 묻자 비교적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서울시향, 오늘 너무 잘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잘하길 바라오”라고 말하고 대기하고 있던 검정 승용차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2005년 서울시향에 예술고문으로 영입된 정 감독은 2006년부터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아 아시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발돋움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국내 마니아층도 양산했다. 정 감독을 영입하기 직전 38.9%이던 유료 객석 점유율은 10년 만인 올해 92.8%를 기록했다.

마지막 지휘를 마친 정명훈 예술감독이 2300여석을 가둔 메운 관객에 인사를 하고 있다. 10여분 넘게 이어진 커튼콜에서 모든 관객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로 정 감독을 배웅했고 일부 관객은 눈시울을 붉혔다.(사진=김미경기자).
취재진의 열기 속 떠나는 정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