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제대로 바람난 제주…땅 매물이 사라졌다

by박종오 기자
2015.11.19 06:00:00

제주 新공항 건설…현지 부동산시장 둘러보니
토지수용 문의전화 5분에 한 통꼴
개발 기대감에 매물 자취 감춰
"공항 건설지 인근 온평리 3.3㎡당
10만원 수준서 이젠 부르는 게 값"

△새 공항 청사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혼인지 일대 [사진=박종오 기자]
[제주=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지난 13일 오후 제주도 동쪽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 있는 성산읍사무소. 시간당 최대 10㎜ 넘게 쏟아진 장대비를 뚫고 온평리 주민 5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곳에서 제2 제주공항 건설 예정지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제주 2공항은 2025년까지 성산읍 고성·난산·수산·신산·온평리 일대 495만 8000㎡ 부지에 짓는다. 이 중 온평리 땅이 70% 이상이다.

“내 땅이 들어갔네.” “우리 집은 피했구먼.” 공항 예정지 지도를 바라보는 온평리 주민 입에서 탄식과 탄성이 오갔다. 공항이 들어설 자리에 있는 땅은 정부가 시세 수준인 감정가에 수용하지만, 공항 예정지 외곽 토지는 개발로 인한 가치 상승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읍사무소 관계자는 “문의 전화도 5분에 한 통꼴로 쇄도했다”며 “자기 땅이 공항 건설 부지에 포함됐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가 갠 이튿날부터 부동산시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정보가 퍼진 것이다. 고성리 고성교차로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이날 매물을 찾는 투자 문의가 몰렸다. 이 지역은 새 공항 상업시설 용지와 가깝고 교통망도 좋아 공항 개발의 최대 수혜지 중 하나로 꼽힌다. 성산읍 전체(107.8㎢)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는 15일 이전에 서둘러 매매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S공인 관계자는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개발 기대감에 부푼 지주들이 매물을 일제히 들여놓아서다. 한전호 토생금부동산 소장은 “온평리만 해도 집을 지을 수 없어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땅들이 적지 않았다”며 “땅값도 3.3㎡당 10만원 선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고성교차로 일대 [사진=박종오 기자]
개발 바람은 성산읍에서 자동차로 20~30분 거리에 있는 남서쪽 표선면과 남원읍, 북쪽 구좌읍까지 불어닥쳤다. 표선면 표선리 학사부동산 관계자는 찢긴 부동산 매매 계약서 뭉치를 꺼냈다. 그는 “1000만원씩 위약금을 물고도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파기된 거래 물건이 대충 이 정도”라고 말했다. 남원읍에 있는 제주한라공인 노시풍 대표는 “땅 주인들이 일제히 관망에 들어가 완전히 휴업 상태”라고 전했다.

제주도가 요즘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섬 역사상 최대 규모인 사업비 4조 1000억원 규모의 제2 제주공항 건설이 확정돼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제주도에서는 건물에 딸린 땅을 제외한 순수 토지 3만 8471필지가 거래됐다. 2010년 1만 8835필지에서 5년 새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제주 서귀포시의 경우 올해 토지 거래량이 1만 8033필지로 벌써 작년 전체 실적(1만 7346필지)을 뛰어넘었다. 바다 건너 육지 투자 수요가 몰린 영향이다.

제주 2공항 개발은 이런 ‘제주 부동산 앓이’에 또 한 번 불 지필 대형 땔감이다. 성산읍 땅값은 올해 1~9월 사이 3.8% 올라 제주도 전체에서 지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새 공항이 들어서는 서귀포 일대는 기존 제주공항이 있는 중심지와 거리가 멀어 발전이 더뎠던 곳”이라며 “부동산 투자 수요가 제주 전역으로 확대하는 물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