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애매한 줄타기
by김정남 기자
2015.06.19 06:01:00
후반기 국회 2년은 지역서 살다시피 하는 일부 비례들
"일회용이냐" 항변도 일리있어…정개특위서 개선해야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새누리당 비례대표인 A 의원은 ‘선명한 혁신’으로 위세를 떨쳤다. 박근혜정부 초 정부당국 수장은 물론 당 지도부를 향해서도 공개적인 맹폭을 서슴지 않았다. “민심을 읽지 못 한다”는 그의 비판은 패기있는 의정활동으로 꽤 평가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19대국회 후반기(2014년 6월 이후)가 되자 180도 달라졌다. A 의원을 국회에서 보기 어려워졌다. 전반기 같았다면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때 ‘한마디’ 했을듯 싶은데도 말이다. 그가 의정활동에서 멀어진 건 1년 가까이 수도권 한 지역구에서 지역활동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A 의원 휘하 보좌진 상당수도 지역에 살다시피 하고 있다. 비례대표 4년 중 2년만 의정활동을 한 셈이다.
비례대표는 흔히 전국구로 불린다. 총선 때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해 선출되기 때문이다. 통상 지역구 정치를 오래 하진 않았지만 각 직능별 정책 ‘주특기’를 가진 인사들이 많다. 입법(立法)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게 비례대표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10여 년간 비례대표만 두 명을 보좌했다는 전직 보좌관의 말이다. “비례 중 스스로 지역구 출마를 거둬들이는 건 한 명도 못 봤다. 겉으로는 ‘정치 더 안 한다’고 해도 국회 후반기 때는 지역구 사정만 살피더라.” 여권 한 관계자는 “의정활동은 열심히 해도 티가 잘 안 난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책 논의는 힘을 잃게 된다.
최근 갑자기 충청권 출마 의사를 밝힌 새누리당 비례대표 B 의원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3년은 의정활동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선택 자체는 지역정가에서 당황스럽게 비쳐진다고 한다.
특히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해온 원외(院外·국회의원에 당선되지 못한 정치인)와 불공정 게임을 촉발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비례대표는 전국 어디서든 사무실을 내고 의정보고를 할 수 있다. ‘현역 프리미엄’도 무시할 수 없다. 사무실 설치마저 법으로 금지된 원외가 불만을 갖는 건 당연하다.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는 기존 새누리당 C 의원에다 새정치민주연합 두 명의 비례대표가 경쟁 중이라고 한다. 원외들은 출마를 엄두도 못 낼 정도다.
그렇다고 비례대표에 마냥 돌을 던질 수만은 없다. 야권 한 관계자는 “정책에 능한 비례대표가 의정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재선이 가능한 여건이 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일회용이냐”는 비례대표들의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비례대표제는 참신한 정치 신인들의 좋은 등용문이기도 하다. 실제 기자가 지켜본 비례대표 중 실력자도 상당히 많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분명하다면 손질해야 마땅하다. 비례대표가 ‘의정’과 ‘지역’ 사이에서 애매한 줄타기를 하는 구조라면 고쳐야 하지 않을까. 이번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