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5.04.05 13:36:45
[조선일보 제공] 서울 중심가에 내로라할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대거 진출, 미국 뉴욕 월가(街) 못지않은 금융타운이 움트고 있다. 이른바 ‘서울판 미니 월가’인 셈이다.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빌딩과 서린동 영풍빌딩, 소공동 한화빌딩 등에는 외국계 은행이나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20여개나 입주, 국내 금융시장을 주무르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국내 M&A(기업 인수·합병)시장과 25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이들 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2000년 말 문을 연 서울 파이낸스빌딩에는 자금운용 규모가 1조달러(약 1000조원)를 웃도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피델리티를 비롯, 7개사에 달하는 외국계 금융회사가 자리잡고 있다. 피델리티 최기훈 부장은 “하루에도 수천억원의 돈이 파이낸스빌딩 안에서 오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린동에 있는 영풍빌딩에도, 작년 한 해 동안 33조원어치의 주식매매중개 실적으로 5년째 외국인 주식매매 중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UBS증권을 비롯한 8개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타운을 이루고 있다. 서울프라자호텔 뒤편 한화빌딩에도 호주계 매쿼리IMM자산운용을 비롯한 5개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이 밖에 메릴린치증권(광화문빌딩), 골드만삭스(흥국생명빌딩) 등도 광화문 인근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대부분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사무실 내부는 독립적인 근무환경에 알맞게 짜여있다. 팀워크나 신속한 의사교환이 중요한 일부 트레이딩룸(주식이나 채권을 사고파는 방)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인 공간을 배려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공간 구성이 돼 있다.
여의도나 강남이 아닌 서울 도심으로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대거 몰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대기업 본사나 정부종합청사 등 비즈니스 대상들이 시내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는 1998년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금융회사들이 대거 몰렸다. UBS증권 안승원 전무는 “기업 간 M&A 시장이 급팽창하고, 펀드 위주의 자산운용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파이낸스빌딩의 경우 공실률(空室率)이 크게 낮아졌다. 반면 임대료는 상향 조정되고 있다. 파이낸스빌딩 관계자는 “임대료는 회사별로 협상을 거쳐 결정된다”며 “임대료 수준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대거 입주하면서 임대료 수준 자체가 한 단계 높아졌다”고 말했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대거 몰리면서 일대 풍경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른 아침이면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을 때우는 금융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4일 오전 7시30분 서울 서린동 샌드위치전문점 ‘오봉팽’에는 이른 아침부터 말쑥한 정장 스타일의 남녀 직장인들이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 줄지어 몰려들었다. 오봉팽 광화문점 이승현 점장은 “지난 2003년 1월 문을 연 이후 평일 아침마다 80석의 좌석이 거의 가득차곤 한다”고 말했다.
광화문에 직장을 갖고 있는 구연경씨는 “자기 이름의 이니셜(머리글자)이 새겨져 있는 맞춤 와이셔츠를 즐겨 입는 등 외국계 금융회사 사람들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도 광화문 일대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