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신경병성 통증 [조성진 박사의 엉뚱한 뇌 이야기]

by노희준 기자
2022.01.22 11:00:00

조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뇌 이야기를 합니다. 뇌는 1.4 키로그램의 작은 용적이지만 나를 지배하고 완벽한 듯하나 불완전하기도 합니다. 뇌를 전공한 의사의 시각으로, 더 건강해지기 위해,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어떻게 뇌를 이해해야 하고, 나와 다른 뇌를 가진 타인과의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함께 탐구해보겠습니다. 일주일 한번 토요일에 찾아뵙습니다.

[조성진 순천향대 부속 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 아프다는 것은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경고반응으로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위험을 미리 방지할 수 있게 하는 필수적인 증상이다. 아프다는 정보는 의사나 환자에게나 진단을 위해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통증은 우리 몸에 그물망처럼 퍼져있는 말초신경으로부터 척수를 통해 뇌의 시상부에 전달되므로 결국 통증은 뇌에서 감지하게 된다.

뇌로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계에 손상이나 기능적 이상이 생기면 신경병성 통증이라는 치료하기가 어려운 만성적으로 오래 지속되는 통증이 생겨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지고 수면장애, 우울증과 같은 정서장애 뿐만 아니라 사회 적응력 저하로 한순간에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고통에 빠지게 된다. 세익스피어가 ‘고통이란 누구든지 이겨낼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만이 고통스러울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그 고통이 신경병성 통증인 경우에는 애기가 다르다.

가장 흔한 신경병성 통증은 당뇨병에 의한 말초신경병증이다. 당뇨병은 몸에 고혈당을 유발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신경에 중요한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는 혈관이 손상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신경이 망가지게 되는데 당뇨병 환자의 50% 정도가 말초신경병증을 앓게 된다.

대상포진을 앓은 후에도 1/5 정도의 환자가 심한 신경통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데 대상포진으로 인한 신경손상으로 망가진 신경이 무작위적인 통증 신호를 뇌로 보내 욱신거리고 타는 듯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대상포진에 의한 발진이 나타난 후 2일내에 적극적인 치료를 해야 신경통의 발병위험을 줄일 수 있다. 현재 대상포진 백신이 출시되었는데 전문가들은 60세 이상의 사람들은 이전에 대상포진에 걸렸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백신은 예방적이며 감염된 사람을 치료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는다.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극심한 고통이라고 불리우는 통증은 삼차신경통이다. 삼차신경은 12개의 뇌신경 쌍 중에 5번 뇌신경에 해당하며 얼굴의 감각을 느끼는 신경으로 3개의 신경이 각각 이마, 광대부위 그리고 아래턱의 감각을 담당하고있다. 일반적으로 한쪽얼굴에만 국한되며 양치질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심한 통증이 유발될 수 있으며, 수초에서 수분간 지속되는게 보통이나 2시간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마치 얼굴에 총상을 입은 것과 같은 통증으로 환자는 절규하게 된다. 일반적인 진통제는 효과가 없고 강력한 항경련제를 복용해야 그나마 통증이 완화될 수 있다.

삼차신경통이 의심되면 고해상도 뇌 MRI를 1mm 간격으로 촬영하여 뇌간 앞에 위치한 삼차신경을 뇌혈관이 압박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혈관이 삼차신경을 압박한 경우에 혈관의 박동이 신경에 전달되어 통증을 유발하므로 이런 경우 결국 삼차신경과 혈관사이에 스폰지 같은 물질인 테프론을 삽입하는 미세혈관감압술을 시행해야 통증이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혈관 압박이 없는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퇴행성 신경질환에 의해 발생되는 경우에는 치료가 더 어렵다. 이런 경우 사이버나이프나 감마나이프와 같은 뇌정위적 방사선수술 기계로 삼차신경에 고선량의 방사선을 조사하면 별다른 부작용 없이 통증완화에 효과적일 수 있다.

팔다리에 골절이나 염좌 같은 손상이 발생한 후에 특별한 신경손상이 없는 경우에도 극심한 통증이 오래 지속될 수 있고, 신경 손상에 의해서도 신경병성 통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신체 고통의 끝판왕이라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이 생길 수 있다. 피부색도 보라빛으로 변하고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마치 화상이나 전기충격을 당한 것과 같은 통증이 발생될 수 있다. 대부분 치료가 어려워 환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지만 아직 이런 경우에 법적으로 장해판정에 어려움이 있어 복지해택을 받기도 어려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연구 보고에 의하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후 말초 또는 중추신경의 이상으로 인한 신경병성 통증의 발생빈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바이러스 치료와 신경병성 통증을 줄이기 위한 치료가 병행되어야 장기적 통증을 막을 수 있다.

고통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알도록 도와주는 인생의 선생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있지만 신경병성 통증은 인간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생을 포기할 생각이 들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므로 발병 후 빠른 치료만이 악화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