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능가...'약물 재창출']‘적응증 확대’로 글로벌 블록버스터 노리는 국내 제약사들...

by류성 기자
2020.12.08 05:03:00

약물 재창출로 블록버스터 의약품 잇단 등극
동화제약, 대웅제약 기존 약으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HK이노엔(케이켑),일양약품(놀텍), GC녹십자(신바로),보령제약(스토가) 등이 대표적
적응증 추가, 시장확대로 매출 극대화 효과
다양한 병치료에 단일브랜드 사용, 인지도 높여

[이데일리 류성 제약바이오 전문기자] 기존 약에서 새로운 효능을 발굴, 추가하는 ‘약물 재창출’은 국내 제약업계에서도 갈수록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 신약개발 전략이다.

적응증 확대를 통해 ‘약물 재창출’에 성공, 국내 대표 블록버스터로 자리매김한 신약들.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HK이노엔의 ‘케이켑정’, 대원제약의 ‘펠루비’, GC녹십자의 ‘신바로’, 보령제약의 ‘스토가’, 대웅제약의 ‘우루사’ 제품 사진
하지만 약물 재창출은 기본적으로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약을 확보하고 있어야 추진할수 있는 신약 개발 방법이어서 아직까지는 메이저 제약사들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자체 신약없이 복제약을 주력으로 하는 상당수 제약사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국내 제약업계에서 ‘약물 재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기업으로는 HK이노엔, 대원제약(003220), 일양약품(007570), 대웅제약(069620), 동아에스티(170900), GC녹십자, 보령제약(003850) 등이 손꼽힌다. 신약 하나 개발하는데 평균 10년에 걸쳐 수조원을 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약품 재창출은 그 기간과 비용을 절반이하로 낮출수 있어 업체마다 중요 전략으로 삼고있다.

약물 재창출은 신약개발 과정에서 필수적인 후보물질 발굴에서부터 동물에게 하는 전임상시험, 사람 대상으로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1상 등을 건너뛰고 곧바로 임상2상부터 시작할수 있다. 특히 약품 재창출은 1가지 의약품에 여러 종류의 약효를 더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매출 극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제약사마다 큰 관심사다.

최상운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원은 “코로나19가 확산, 지속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기존 약물을 활용해 전염병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미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보한 약물이어서 새로운 적응증을 발굴하는 것은 신약개발보다 훨씬 수월해 제약사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면서 보유한 신약들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재창출하려는 국내 업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동화약품(000020)은 개발중인 천식치료제(DW2008S)를 코로나19 치료제로 쓰일수 있는지 확인코자 최근 식약처로부터 임상2상을 승인받았다. 대웅제약도 최근 췌장암 치료제인 호이스타정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약물 재창출을 하고자 임상2상 환자모집을 완료했다.

약물 재창출에 성공한 사례도 늘고있다. HK이노엔은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로 자리잡은 ‘케이캡정’을 활용, 약물 재창출 전략을 성공적으로 펼치고 있는 제약사로 평가된다. HK이노엔은 케이캡정을 지난 2018년 대한민국 30호 신약으로 허가받았다. HK이노엔은 케이캡정에 대해 처음 식약처 허가를 받을 때부터 약물 재창출을 염두에 둔 케이스다. 처음에는 위식도역류질환 환자 대부분이 미란성 및 비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에 착안, 두가지 적응증만을 허가받았다. 이후 위궤양 치료와 헬리코박터 제균을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에 대해 적응증을 추가, 수요 확대를 꾀했다. 선제적 약물 재창출 전략덕에 케이캡정은 출시한 지난해 매출 263억원을 거둔데 이어 올해는 700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박경선 HK이노엔 케이캡전략팀 부장은 “적응증 확대 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는 약물자체의 특성과 시장상황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면서 “약물 재창출은 이미 허가 받은 약물의 안전성 프로파일이 있기 때문에, 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어 글로벌 제약업체들도 큰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양약품의 ‘놀텍’은 시장의 판도가 급변하는 것을 발빠르게 포착, 적응증을 추가하면서 히트 의약품으로 변신한 사례다. 일양약품은 지난 2009년 위궤양 및 십이지양궤양 치료제로 놀텍을 선보였다. 하지만 불과 몇년 사이 한국의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대세였던 위궤양 및 십이지양 궤양 환자는 급감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대신 역류성식도염 환자가 급증하면서 환자의 80%까지 늘어났다. 이 결과 출시 초기 놀텍의 매출은 20억원 가량에 그쳤다.

비상이 걸린 회사는 신속하게 역류성식도염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거쳐 역류성식도염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했다. 놀텍 출시 이후 불과 3년만에 약물 재창출을 이뤄낸 것. 2017년에는 헬리코박테제균 적응증을 추가했다. 지난해 놀텍은 처방액 기준 매출 356억원을 거두면서 국산 신약 14호로서의 진가를 보여줬다. 올해 놀텍은 매출 400억원을 넘길 것으로 회사측은 전망한다. 권기한 일양약품 놀텍 프로덕트 메니저(PM)는 “신약은 출시 이후 3년 사이 자리를 못잡으면 도태하는 수순을 밟는데 놀텍은 신속한 약물 재창출로 블록버스터로 역전성공한 사례”라고 소개했다.

자체 개발한 의약품 대신 남의 신약을 사들여 적응증을 추가, 블록버스터로 키워낸 경우도 있다. 보령제약은 일본 유씨비 재팬으로부터 ‘스토가’를 라이선스 인으로 들여와 약물 재창출에 성공한 독특한 이력의 의약품이다.

보령제약은 지난 2009년 스토가를 위궤양 치료제로 기술수입,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하지만 예상보다 판매가 부진했다. 결국 보령제약은 자체 임상을 거쳐 역류성식도염 치료제로 적응증을 추가하는 전략을 통해 스토가를 부활시켰다. 스토가의 지난해 매출은 112억원, 올해는 2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간장용제로 출발해 만성 간질환, 만성 C형간염, 담석증, 그리고 희귀질환인 원발성 담즙성 간경변증(PBC)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적응증을 추가한 대웅제약의 ‘우루사’, 관절염 치료제로 선보인 후 소염, 진통, 골관절염 치료제로 잇달아 적응증을 확대한 GC녹십자의 ‘신바로’ 등이 대표적 약물 재창출 성공사례다.

약물 재창출 전략으로 대표적 소염진통제 ‘펠루비’를 일궈낸 대원제약의 백승열 대표는 “상당수 국산 신약은 출시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데 비해 펠루비는 신규 적응증을 지속적으로 추가하면서 출시 당시보다 매출이 10배 가량 늘어났다”면서 “현재도 월경통 적응증 추가를 앞두고 있을 정도로 펠루비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