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슬기로운 투자생활]양적완화 결말은 부익부빈익빈

by이슬기 기자
2020.06.04 05:30:00

돈이 흘러 넘친다고 주식사는데…한켠에선 폭동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10년의 단면
더 큰 규모로 이뤄지는 양적완화…자산가격은 들썩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기자의 하루는 간밤 나온 뉴스들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최근 새벽녘 나온 뉴스들을 정리하다 보면 다소 착잡한 마음이 듭니다. 세상 한 쪽에선 돈이 흘러넘친다고 뭐든 좋으니 주식을 사자고 하는데, 한켠에선 못 살겠다며 폭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도대체 같은 날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맞는지 어안이 벙벙할 때가 많습니다.

미국 내 인종차별 항의 시위는 비무장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숨진 사건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시위의 방아쇠를 당겼을 뿐, 그 이면엔 오래된 양극화 문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미니애폴리스는 미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흑인가구 중위소득은 3만 8200달러로 백인가구 8만 5000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죠. 안그래도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흑인가구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닥치면서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니 흘러넘친다던 돈은 이들에겐 가지 않은 것으로 보이네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이상 이어져 온 양적완화의 단면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양적완화로 인해 풀린 돈들은 자산가격을 떠받치는 데 이용됐고, 사람들의 월급과 연관된 실물경제를 받치는 데엔 큰 역할을 하지 못한 탓입니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을 갖고있는 사람들은 시세차익을 누렸지만,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제자리걸음 또는 후퇴할 수밖에 없던 게 양적완화 이후 우리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얘기는 수 년 동안 수많은 지식인들이 해 온 경고이기도 하죠.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동은 이런 불만이 쌓이고 쌓여 터진 하나의 표상에 진배 없습니다.



문제는 양적완화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심지어 훨씬 더 큰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대차대조표 규모는 벌써 7조달러를 넘어섰는데, 이는 1년 전에 비해 3조달러 가량 늘어난 수치입니다. 2008년 위기 이전엔 1조 달러 수준에 불과했던 연준의 자산이, 2015년 4조 달러대가 되기까지 7년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돈이 풀리고 있다는 거죠. 심지어 일각에선 연준의 자산이 올해 10조달러가 될 것이라고 관측하는 목소리들도 나옵니다.

자산가격은 벌써 들썩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안 좋다는데, 심지어 폭동이 일어나서 가게들이 ‘록다운’에 들어간다는데도 주식시장은 연일 오릅니다. 돈이 있는 자들은 급기야 정부가 준 재난지원금을 끌어서까지 주식을 사고 있죠. 데이터 처리 회사인 인베스트넷 요들리에 따르면 연소득 3만 5000달러(4300만원)에서 7만 5000달러(9300만원)를 버는 미국인들은 코로나19 관련 정부지원금을 받은 뒤 한 주간 주식 거래가 그 전주 대비 90% 이상 늘었다고 하네요.

사회는 돈의 편에 섰습니다. 트럼프 집무실에 주가 전광판이 있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트럼프는 주식시장을 신경쓰죠. 하루는 연준에게 금리를 내리라고 때리다가, 또 하루는 코로나19 백신이 곧 나올 것처럼 얘기하는 등 매일 시장에 호재를 안겨주기 바쁩니다. 그런데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를 향해서는 “인간 쓰레기”라고 일갈하죠. 트럼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마틴 루터 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폭동은 무시당하는 존재들의 언어(A riot is the language of the unheard)”라고요. 증권시장을 지켜보는 기자인데도 최근의 상승장이 못내 불편한 건, 우리 사회가 애써 누군가를 지워버리려 하는 듯해서 그렇습니다. ‘주가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함수’라는 말이 여의도에서 통용되지만, 요즘엔 꼭 그렇지도 않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