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 25]① '21세기의 연금술' 나노기술…4차산업혁명 핵심 기술 주목

by이연호 기자
2018.09.03 07:57:47

1981년 STM개발 후 풀러렌,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등 연이어 발견…나노기술 연구 붐
韓, 세계 4위 나노기술 국가로 발전…4차산업 시대 역할·중요성 더욱 부각
연평균 50% 육박 빠른 성장률…세계 시장 규모 2020년 3조달러 전망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인류의 삶과 미래를 혁명적으로 바꿀 유망 기술 중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기술이 바로 나노기술(Nano Technology)입니다.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환경공학기술(ET), 우주항공기술(ST), 문화콘텐츠기술(CT)과 함께 미래 6대 유망기술로 꼽히기도 합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세상의 모든 것은 작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작은 것을 이루고 있는 더 작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계속 반복돼 우리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작은 세상이 나타납니다.하지만 현미경의 발전으로 이렇듯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사람들이 보고, 더 나아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작하기도 합니다. 물건을 점점 더 작게 만들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성질의 물건까지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바로 나노기술이 가져다준 놀라운 세계의 단면입니다.

먼저 나노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기원한 말입니다. 그만큼 작다는 의미로 실제 나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준의 기술을 가리킵니다. 1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미터(m)로 머리카락 굵기의 8만분의 1 크기에 해당합니다. 만약 지구 크기를 1미터라고 한다면 축구공을 나노미터 크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노기술은 10억분의 1 수준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극미세가공 과학기술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최소의 원료로 최고 성능을 지닌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입니다. 나노기술을 이용하면 특별한 기능을 가진 신물질과 첨단제품의 생산이 가능합니다.

나노융합 소재가 전기·전자, 자동차, 항공, 섬유, 정보통신(IT), 디스플레이, 에너지, 인공지능(AI), 의료·바이오, 3D 프린팅, 로봇 등 다양한 산업과 접목되면 이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기대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개척해 가고 있는 ‘21세기의 연금술’로 불리는 나노기술은 단연 21세기를 선도하는 기술로 꼽힙니다. 20세기를 마이크로 시대라고 한다면 21세기는 나노의 시대인 것입니다.

나노기술이 발전하면 연필심(흑연)을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연필심과 다이아몬드는 같은 탄소원자(C)들로 구성돼 있지만 원자의 배열이 다를 뿐입니다. 연필심의 탄소 원자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면 연필심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이처럼 나노 단위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물체와 전혀 다른 구조와 특성이 나타납니다. 육각형의 판 모양으로 연결돼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흑연의 판 하나가 말려서 관 모양을 한 탄소나노튜브는 구리만큼 전기를 잘 통하고 열도 잘 전달합니다. 또 강철 대비 100배에 달하는 세기를 가지며 탄성도 높습니다. 나노 크기로 변하면 색깔도 바뀝니다. 금은 노란색이지만 나노 크기의 금은 붉은색을 띱니다.

입자가 작아질수록 표면적이 증가하게 돼 반응속도가 빨라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아주 적은 양의 은으로도 살균효과를 크게 할 수 있다거나 전지 용량을 늘리는 것은 이를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구체적으로 은나노 세탁기나 공기청정기를 예로 들면 살균력의 특성이 있는 은을 나노 크기로 만들면 세탁시 살균 기능이 극대화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은나노 입자는 약 650여종의 세균을 살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노기술은 지난 1959년 미국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 교수가 미국 물리학회에서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는 제목의 강연에서 처음 제시했습니다.

이 강연에서 파인만은 브리태니커 사전 24권에 들어 있는 모든 내용을 하나의 여자 머리핀 머리에 담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엔 한낱 꿈 같은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현실이 되었죠.

1981년 스위스 IBM연구소 소속 물리학자 게르트 비니히와 하인리히 로러가 원자와 원자의 결합상태를 볼 수 있는 주사형터널링현미경(STM)을 개발하면서 물질의 근본을 이루는 나노 세계에 대한 이해가 가속화됐습니다. STM이 비로소 나노기술의 출발점을 연 셈입니다. STM 개발로 강철같은 섬유, 분자크기의 컴퓨터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며 세계적으로 나노기술 연구 붐을 일어났습니다.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풀러렌(1985), 탄소나노튜브(1991), 그래핀(2004) 같은 탄소 나노소재가 연이어 발견됩니다.

1991년 일본전기회사(NEC) 부설 연구소의 이지마 스미오 박사는 지름이 1나노미터 정도로 가늘지만 강도가 강철의 100배 이상일 만큼 견고하고 구리와 전기 전도율이 비슷하며 열 전도율은 자연계에서 가장 뛰어난 다이아몬드와 같은 ‘탄소나노튜브(CNT·Carbon Nanotube)’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뛰어난 물성 덕분에 ‘꿈의 신소재’라 불리며 반도체에서부터 2차전지, 자동차, 항공기 동체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엔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는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고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며 다이아몬드보다 열 전도율이 2배 이상 높을 뿐만 아니라 잘 휘어지는 성질이 있어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기존 꿈의 신소재인 탄소나노튜브의 기세를 꺾고 현재 가장 각광 받는 새로운 꿈의 신소재인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의 육각형 구조를 이루면서 한 층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주로 반도체 제조공정의 미세화 한계를 극복하고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배터리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활용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집중됐으나 최근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태양전지는 물론 의료, 선박 등 점차 그 활용 가능성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그래핀 제조산업은 세계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분야입니다.
지난 2000년 미국이 선도적으로 국가나노기술발전계획(NNI)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에서 나노기술에 대한 투자를 촉발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듬해인 2001년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해 세계 5대 나노기술 대국을 목표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정부는 나노기술분야에 계획 대비 126.1%인 6483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지난 2001년 이후 총 5조6947억원을 투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나노코리아 2018’ 개회식 영상메시지를 통해 “우리 나노기술은 2000년대 초 선진국의 25%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나노기술이 적용된 메모리 반도체가 수출 1위 제품으로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하는 등 세계 4위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며 “또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첨단센서 등 다양한 산업에 동반발전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나노기술의 가장 큰 시장은 바로 반도체산업으로 반도체 소자의 최소 선폭이 현재 10나노미터 이하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지난달 11일 ‘나노코리아 2018’ 개막식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서 “반도체는 궁극적으로 나노기술 없이는 계속 발전할 수 없다”며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미래 반도체 개발을 위해서는 반도체 회사와 장비·소재 업체와 ‘컬래버레이션’이 없이는 힘들다”고 밝혔습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 도래로 나노기술의 역할과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양준모 나노종합기술원 나노융합기술본부장은 “4차산업혁명은 결국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것이 근간인데 반도체 트랜지스터 크기를 계속 작게 하려면 공정에 나노기술이 적용돼야 한다”며 “또 사물인터넷(IoT)시대에 필요한 센서 수요량이 급격히 늘고 있는데 이 센서 역시 나노공정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나노기술은 기존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 동력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기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기존에 인쇄는 신문이나 전단지 등과 같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사용하는 기술로만 인식됐으나 최근에는 전자제품도 인쇄로 제조할 수 있는 ‘인쇄전자’라는 분야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도성을 나타내는 금, 은, 구리, 알루미늄 등과 같은 소재를 나노미터 크기로 만들면 매우 낮은 온도에서 녹기 때문에 이들 소재를 포함하는 나노잉크를 사용해 전자회로를 인쇄함으로써 소자를 만드는 산업이 태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 나노입자는 특정한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 등과의 반응에 의해 질병을 조기진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을 질병의 원인균에 직접 전달하는 기술 개발 등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 나노 기술도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기술들과 융·복합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연평균 50%에 육박하는 매우 빠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나노산업 세계 시장 규모는 오는 2020년 약 3조달러 규모로 예측되고 있어 그 파괴력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