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앞 내다본 최종현 유공·최태원 하이닉스 투자..SK 일군 '부전자전 DNA'

by김미경 기자
2018.08.23 06:21:00

혁신가 최종현 선대회장
DNA 물려받은 승부사 최태원
‘신 성장 투자’ 공통 관심
직원들과 토론 즐기는 소탈함도 닮아

1997년 9월 폐암수술을 받은 최종현(사진 가운데) SK그룹 선대회장이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 오른쪽은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다. 최 선대회장은 이로부터 1년 뒤인 1998년 8월26일 별세했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1994년. 선경(현 SK)이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017670))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룹 내부에선 잠시 동요가 일었다. “너무 비싼 값에 인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그룹 안팎에서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최종현 회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다. 기회를 돈만으로 따질 수 없다. 우리는 통신사업 진출 기회를 산 것”이라며 4271억원을 들여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현 SK이노베이션(096770)) 인수 때도 그의 추진력은 돋보였다.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10년전부터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업계에선 이 같은 최 회장의 저력을 두고 탁월한 판단력과 선견지명(先見之明), 남다른 배짱과 기업가정신의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 선대회장의 이러한 유전자(DNA)는 장남 최태원 SK회장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이사진의 반대에도 ‘적자’ 행보를 걷던 하이닉스 반도체를 인수한 뒤 연간 이익 13조원인 지금의 SK하이닉스로 키워낸 것도 선친의 경영 스타일과 너무나 닮아있다.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도전정신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특히 선친의 경영 DNA를 쏙 빼닮은 최태원 회장의 경영 행보에도 이목이 쏠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별세한 지 26일로 20년을 맞는다. SK그룹은 오는 24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20주기 행사를 연다. 각계 인사 5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업적과 경영철학을 기릴 예정이다. 고인은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태원 회장도 바빠졌다.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더 나은 SK를 만들겠다”는 일념에서다. 최 회장도 그룹을 20년째 이끌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석유화학과 정보통신 중심인 그룹 사업 영역을 반도체와 바이오 등으로 넓혔다.



최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선친인 고 최종현 회장이 미래 산업을 예견하고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지만 2차 오일쇼크로 사업을 접었던 것을 회상한 발언이었다. 그가 2011년 인수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30조1094억원, 영업이익 13조7213억원을 거두며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45%를 담당하는 캐시카우가 됐다. 이후에도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등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며 SK그룹이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ICT), 바이오 사업으로 외연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최태원회장으로 이어진 경영철학은 45년(올해 창립 65주년) 동안 변화와 혁신을 거쳐 SK그룹을 반도체·정유화학·통신 등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최 회장의 취임 당시인 1998년 약 32조원이던 SK그룹의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182조원으로 6배가량 증가했다. 시가총액 상으론 명실공히 재계 3위에 안착했다는 평가다.

“정신적인 면이나 경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패기와 열정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최태원 회장이 선친의 10주기에 한 말이다. 최 회장은 “탱크 안에 물이 있다고 좋아할게 아니라 내가 파이프를 만들어 그 안에 언제든지 물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꾸준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최 회장은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 데스(Sudden Death·돌연사)한다”고 경고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딥체인지(근본적 변화)를 강조했다. “준비된 기업엔 언제든 기회가 온다”는 최 선대회장의 경영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딥체인지는 사업구조의 근본적인 혁신 등을 뜻하는 것으로, 최태원 회장이 2016년부터 강조해온 SK그룹의 경영화두다. 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업 방식과 사고를 바꿔야 한다는 최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다. 소탈함도 닮았다. 임직원들과 열띤 토론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입사원과의 대화는 1979년 최 선대회장이 그룹의 경영 철학과 비전 등을 직접 설명하기 위해 시작한 뒤 올해로 39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향후 3년간 80조원에 달하는 통 큰 투자를 결정한 상황인 만큼 최 회장 행보가 예의주시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올해로 취임 20주년을 맞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선친의 20주기 추모식을 앞두고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주력사업의 근원적 변화와 사회적 가치 창출을 추구하는 최태원 회장의 경영전략에 따라 앞으로 수년간 많은 변화와 공격적 M&A 등을 통해 사업 확장이 일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