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하는 전세값 하락세..전세시장 동맥경화에 집주인 ‘전전긍긍’

by권소현 기자
2018.04.20 06:00:00

서울 아파트 전셋값 9주째 하락세…강남 개포주공 84㎡ 2년새 1억↓
만기는 다가오고 새 세입자는 없고…전세 낀 갭투자 집주인 타격 커
다른 지역으로 하락세 확산 우려…일각에선 ''일시적 현상'' 분석도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1.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옛 가락시영아파트) 전용면적 84㎡를 분양받은 서 모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올해 말 입주 때 전세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치를 생각이었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서씨는 보통 입주 시점에 집값이 오르니 계약금 8500만원을 제외한 중도금 대출과 잔금을 전세보증금으로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전세시장 안정으로 헬리오시티 아파트 전셋값이 6억원대까지 떨어지자 마음이 급해졌다. 이마저도 세입자를 못 구해 잔금을 연체하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2. 지난해 서울 서초구에서 입주 30년이 넘은 아파트를 전세 끼고 산 한 모씨도 걱정이 태산이다. 2016년 3월 6억 8000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한 세입자가 만기가 돌아와 나가겠다고 해서 주변 부동산에 내놨는데 전셋값이 6억원 수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6억원에 새 세입자를 구해도 8000만원을 보태서 전세보증금을 내줘야 한다. 자금 여유가 없어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것도 부담인데 들어오겠다는 세입자도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이 심상찮다. 새 아파트 입주가 대거 예정된 곳을 중심으로 전세 급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입주를 앞둔 아파트는 물론이고 인근 아파트까지 줄줄이 전셋값이 하락하고 세입자 구하기는 어려운 역전세난이 확산하는 양상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한 주간 0.07% 내려 9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성동구가 0.24% 떨어졌고 송파(-0.2%)·서초(-0.15%)·강동(-0.13%)·강남구(-0.12%) 등 강남4구의 전세값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올 들어 누적으로 보면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이 2% 넘게 미끄러졌고 서초·강동·동작구도 1% 이상 하락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도 “입주 물량이 몰려 있어 전세수요가 분산됐거나 재건축을 앞둔 오래된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전셋값도 약세”라며 “하남 미사강변도시나 위례신도시 등 인근 택지지구 입주 여파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전세 만기를 앞둔 집주인들은 좌불안석이다. 전셋값이 떨어졌다고 해도 지금 만기가 돌아오는 전세계약이 이뤄진 2016년 4월에 비해 전세가격이 아직은 높은 단지가 대다수다. 하지만 일부 입주 물량이 몰려있는 단지에서는 2년 전보다 낮은 수준에서 전셋값이 형성된 곳이 적지 않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실제로 헬리오시티 입주 영향권에 있는 강동구 둔촌동 현대1차아파트 전용 84㎡는 이달 초 3억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다. 2년 전 최고 3억2500만원에 계약이 성사됐던 것과 비교하면 2500만원 가량 전셋값이 떨어진 것이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7단지 전용 84㎡도 2016년 4월 5억 5000만~5억 6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지만 지금은 1억원 가량 떨어진 매물이 나오고 있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오는 11월 입주하는 래미안 루체하임(개포주공8단지) 주변 단지를 중심으로 전셋값 하락세가 뚜렷하다”며 “작년 전세가격이 높았을 때 전세 끼고 갭투자했을 경우 올해 말부터 역전세난 때문에 상당히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입주를 앞둔 새 아파트 주인들도 마음이 급해졌다. 경쟁적으로 전세가격을 낮춰 세입자 구하기에 나선 경우도 적지 않다. 오는 6월 입주하는 서초구 잠원동 아크로리버뷰(신반포5차 재건축 아파트) 전용 84㎡ 전셋값은 10억~12억원 수준으로 한 달 전보다 2억원 넘게 빠졌다. 오는 12월 입주하는 헬리오시티 전용 84㎡도 지난달 초 8억원대에서 지금은 6억 7000만원으로 호가(부르는 가격)가 떨어졌다. 송파구 가락동 G공인 관계사는 “헬리오시티가 9500가구가 넘는 대단지이다 보니 입주가 다가올수록 전세 물량이 늘면서 가격이 더 떨어질 게 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같은 전셋값 하락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단지 아파트 입주가 본격화하면서 전세수요를 흡수하면 주변 단지들은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전셋값을 더 낮춰야 하고 입주 물량 이슈가 없는 다른 지역으로도 가격 하락세가 확산하는 물결 효과가 예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작년 8·2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 집값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고액 전세자 상당수가 내 집 마련에 나서 전세 수요도 많이 줄어든 상태다. 영등포구 당산동 K공인 관계자는 “당산동 일대에는 작년 8월 롯데캐슬 이후로 신규 입주 물량이 없는데도 전셋값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입주 물량에 따른 전셋값 하락은 일시적인 현상에 머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2008년 재건축 단지인 잠실 1~2단지(엘스·리센츠)와 잠실시영아파트(파크리오) 입주로 일대 아파트 전셋값이 일제히 하락하며 역전세난을 겪기도 했으나 2009년부터 전세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며 전세가격이 크게 올랐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공급이 몰렸다가 뜸한 시기도 오면서 수급이 자연스럽게 조정되는데다 재건축을 위한 이주수요도 있다”며 “경기 침체와 같은 변수가 없다면 재계약 시점에 전셋값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