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통계 '구멍']주택수도 모르는…정부 '깜깜이 통계'

by박종오 기자
2015.12.14 06:00:00

소유·거주 '미스매칭'
통계청·국토부 주택 조사기준 제각각
어디에 몇가구 있는지 파악 못해
오피스텔·다가구 수도 반영 안돼
재고·공급·가격·거래 DB 구축
월세 확산, 공급 포화 대비해야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여주인공 덕선(왼쪽에서 첫째)은 단독주택 반지하에 가족과 함께 거주한다. [사진=CJ E&M]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19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여주인공 덕선(혜리)은 단독주택 반지하에 산다. 동갑내기 친구인 정환(류준열)의 집에 세 들었다.

덕선이 사는 반지하 주택은 1984년 규제 완화 이후 수도권 도심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늘었다. 그러나 정부가 이 현황을 처음 파악한 것은 불과 10년 전인 2005년이다. 반지하 거주 가구가 전국적으로 59만 가구에 육박했지만, 공식 통계가 없었던 것이다.

당신이 우리나라의 주택·부동산 정책을 맡은 장관이 됐다고 치자. 먼저 봐야 할 통계 지표는 무엇일까.

‘주택 재고(stock)’다. 어디에 어떤 집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정책 마련의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생산하는 부동산 관련 통계는 총 35종에 이른다. 주택 재고·공급·가격 및 거래·부동산 금융·주거 환경 등 6개 분야에 걸쳐 있다.

문제는 이 중 주택 수급 동향 및 주거 실태를 꿸 수 있는 정확한 재고 통계가 없다는 점이다. ‘주택 보급률’(가구 수 대비 주택 수 비율)이 이로 인해 혼선을 빚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자료는 정부가 집의 많고 적음을 파악해 정책 기초 자료로 활용할 목적으로 1970년부터 만들고 있다. 2000년부터는 매년 발표한다.

통계청이 5년마다 전국 주택을 전수 조사하는 인구주택 총조사 시행 시기에는 해당 자료를 보급률에 그대로 반영한다. 총조사가 없는 해에는 통계청 수치에 매년 새로 지은 집을 더하고 멸실(滅失) 주택은 빼는 식으로 추정치를 뽑는다.



이 통계의 신뢰도를 갉아먹는 최대 걸림돌은 ‘다가구주택’이다. 집주인이 한 명인 단독주택의 하나로 분류하지만, 실제로는 원룸 등을 쪼개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다가구는 건축물대장을 보거나 집을 방문해도 실상을 알기가 쉽지 않다”며 “주택 소유와 실제 거주의 ‘미스 매칭’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통계청 주택 총조사에서 서울의 거주 단위 주택 재고 물량은 총 339만 9800호였다. 한 가정이 독립된 생활을 하는 공간을 기준으로 집을 센 경우다. 반면 건축물대장으로 파악한 주택 수는 306만 2400호로, 이보다 33만 7400호 적었다. 대장에는 일반 단독주택이라고 올려놓고 다가구주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서울에 있는 일반 단독주택 중 전기 계량기가 2개 이상 달린 사실상의 다가구주택을 뺀 일반 단독은 34.1%에 불과했다.



정부가 2008년 다가구주택 개별 가구를 모두 주택 수에 포함한 새 주택 보급률을 내놓긴 했다. 단독주택 화장실이나 부엌 수, 출입구 등을 통해 헤아린 추정치이긴 하지만, 이런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당장 다가구를 포함한 단독주택 신축에 최근 불이 붙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에서 건설 인허가를 받은 단독주택은 7만 4461채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4% 증가했다. 전세난이 만성화하면서 저렴한 집을 찾는 수요가 많아진 영향이다.

공급 물량이 느는데 통계의 빈틈은 커졌다. 올해부터 인구주택 총조사 방식이 크게 달라져서다. 정부는 2015년 조사부터 현장 조사 비중을 20%로 낮추고 80%는 주민등록부·건축물대장 등 행정자료를 사용하기로 했다. 건축물대장 의존도가 높아지는 셈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작년 11월 200억원을 들여 행정 자료와 현장 실태를 대조하는 ‘가구주택 기초조사’를 했다”며 “전국 주택을 조사원이 모두 확인해 행정자료의 오차를 줄이려는 것으로, 앞으로도 5년마다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문 조사를 행정 자료로 대체한다는 본디 취지와 달리, 부정확한 건축물 정보를 보완할 또 다른 전수 조사가 필요해진 것이다.

주거용 오피스텔인 ‘아파텔’ 등 변화한 주택 트렌드를 재고 통계에 반영하지 않아 현실에 뒤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고 주택 데이터베이스를 제대로 마련해야 지역별, 가구원 수별 매칭이 가능한 맞춤형 주택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택 공급 통계도 보완이 필요하다. ‘택지 개발→주택 건설 인허가→착공(분양)→준공(입주)’으로 이어지는 주택 공급 주기별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LH 조사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에서 인·허가를 받고도 첫 삽을 뜨지 않은 미착공 물량은 138만 6962채에 달했다. 일종의 공급 대기 물량이다. 이를 파악해 경기 회복 시점에 주택 공급물량이 갑자기 쏟아지는 부작용을 막고 장·단기적인 예측 가능성을 높이자는 이야기다.

주거 복지 및 환경 지표는 중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을 측정할 수 있는 RIR(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 통계를 보강하고, 재고 주택의 질을 파악할 수 있는 주택 상태 조사를 새로 만들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월세 확산과 주택 공급이 포화에 이른 저성장 시대 진입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한 주택 정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주택 보급률이 일정 수준에 이른 외국의 경우 저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주택 공급보다 재고 주택 품질 관리 문제가 중요 쟁점이 된다”며 “우리도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이런 통계 지표를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단독주택은 통상 한 가구가 단독으로 생활하기 위한 시설과 규모를 갖춘 집을 말한다. 다가구주택은 총 3개 층(지하층 제외)·전체 바닥면적 660㎡ 이하면서 최대 19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주택으로, 건축법상 단독주택으로 분류된다. 다세대주택은 다가구와 달리 4개 층·660㎡ 이하이고 가구별로 구분등기가 가능한 공동주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