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숨겼는데 과태료 300만원"..공직자 재산공개 곳곳이 구멍

by최훈길 기자
2015.05.13 07:00:00

공직자윤리위, 최근 3년간 고위직 46명 과태료 처분
3억~50억 허위신고에 과태료 최대 500만원, 징계는 3명뿐
허술한 법망, ''몰랐다'' 해명에 처분 경감, 위반자 비공개
"눈치보는 윤리위 개편하고, 법 개정해 정무직도 엄중문책해야"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 공직자 재산공개 대상자인 모 지방의회 의원 A씨는 최근 50억원 가량의 재산을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A의원은 ‘처음으로 재산신고를 하다보니 실수했다. 가족 재산을 일일이 다 어떻게 알겠느냐’고 항변했다. 인사혁신처 소속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관할법원을 거쳐 이 의원에게 내려진 처분은 과태료 300만원이 전부다. 선출직이어서 징계도 받지 않았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경선 기탁금 1억 2000만원의 출처가 ‘아내의 비자금’이라고 해명했다가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직자 재산신고 당시 등록 재산에서 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홍 지사가 의도적으로 재산을 감췄다고 해도 현행법상 가능한 처벌은 과태료 뿐이다. 선출직이어서 인사상 불이익을 줄 방법도 없다. 공직자 재산공개에 대한 의무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인사혁신처(인사처) 따르면, 정부공직자윤리위가 재산신고 누락으로 과태료를 부과한 공직자는 2012년 16명, 2013년 12명, 2014년 18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3억~50억 원대 재산을 신고하지 않았지만, 100만~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면죄부를 받았다. 특히 재산신고 누락으로 징계를 받은 공직자는 2012년 3명을 끝으로 현재까지 없다.

인사처 관계자는 “재산신고 위반자 대다수가 정무직이나 선출직이어서 징계자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공직자윤리위는 등록 재산 중 총 누락금액이 3억원 이상인 경우 과태료 부과 또는 징계를 할 수 있다. 현금, 비상장 주식 등 당사자가 신고하지 않으면 확인이 어려운 재산은 1억원 이상이다. 과태료 금액은 관할법원에서 결정한다. 정부공직자윤리위 관할 재산공개 대상자는 행정부 소속의 정무직, 고위공무원단 가등급, 국립대학총장, 공직유관단체 임원, 기초·광역 지방자치단체장, 광역의회의원, 시·도 교육감 등이다.

문제는 정무직이나 선출직에서 주로 재산신고 누락이 발생하는 데 처벌 규정은 없고 과태료 상한선도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서 장·차관 등 정무직, 지방의회 의원·지자체장 등 선출직의 경우 법 위반 시 가장 무거운 처분이 과태료 제재다. 그나마도 한도가 최고 2000만원으로 제한돼 있다.



공직자윤리위에 회부돼도 소명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과태료 처분조차 없이 일단락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사처가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2009~2013년 정부공직자윤리위 재산심사 처분 현황’에 따르면 5년간 재산 허위신고로 제재 대상에 오른 1544건 중 과태료·징계 처분은 228건(14%)에 그쳤다.

이들 공직자들은 수억~수십억원대 재산을 누락해 놓고도 “아내가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돈을 아무도 모르게 투자해 불렸다”, “신고 항목이 많아서 헷갈렸다”는 식의 해명을 내놓고는 정상참작을 호소한다. 고의성을 인정한 경우는 없다. 공직자윤리위는 대부분 해명을 수용해 대다수를 처벌대상에서 제외했다. 공직자윤리위는 정부위원(4명)·민간위원(7명) 등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허위로 재산을 신고했다가 적발돼도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은 없다. 정부는 재산신고 시 등록재산을 누락한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인사처 관계자는 “재산신고를 누락한 공직자는 부정축재자라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어 실명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성범죄자 현황도 모두 공개되는 시대인데 허위재산 신고자를 감싸는 건 맞지 않는 처사”라며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공직자윤리위를 독립적으로 구성하고, 허위신고를 한 정무직도 엄중문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