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소상공인]손 한번 못 내밀고 사라져가는 사람들
by윤종성 기자
2012.11.27 08:46:26
<소상공인 정책의 허와 실>①정책의 사각지대..무너지는 소상공인들
경쟁 심해지면서 줄어드는 이익..'그들만의 리그'서 시작된 치킨게임
소상공인 태반이 빚더미 창업.."생태계 붕괴되면 가계부채 뇌관될 수도"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한국 경제의 실핏줄으로 불리는 소상공인은 전체 중소기업의 88%에 달하는 275만개나 된다. 종사인력도 경제활동인구의 20%가 넘는 533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늘 정책 우선순위의 뒷전에 머물러 있다.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은 올 예산의 8.2%만을 소상공인 쪽에 할애 하고 있다.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해본다. [편집자]
대기업 H사를 퇴직하고 올초 창업한 조성주(가명·32)씨는 요즘 후회가 밀려온다. 친구들과 돈을 모아 소셜커머스 업체를 차렸지만 한 달 매출에서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를 내고 정작 손에 쥐는 돈은 고작 100만원이 안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닐 때만해도 연봉이 5500만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급통장에 들어오는 돈만 따지면 5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조 씨는 “함께 뜻을 모았던 친구들 중 절반이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갔다”며 “아이템 하나로 사업을 시작해 생계를 꾸려간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미처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을 다니다 3년전부터 서울 송파구에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김상현 (가명·52)씨도 요즘 울상이다. 전업주부 아내와 고등학생 자녀 2명 등 3명의 부양가족을 두고 있는 김씨는 한달에 적어도 300만원은 벌어야 생활비와 아이들 학비를 근근이 댈 수 있지만 기껏 150만원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 골목 저 골목에 들어서는 커피전문점들을 보면 한숨만 절로 나온다. 그는 “저녁에 대리운전이라도 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든다”며 “3년동안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면서 요즘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소자본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든 자영업자들, 이른바 소상공인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퇴직자들과 갈곳 없는 청년 실업자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소자본 창업에 발을 들이지만, 격화된 경쟁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쓴 잔’을 들이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형 마트 등 거대 자본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다는 구실로 소상공인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지만, 정책의 ‘사각 지대’에 놓인 이들은 어디에도 손 한번 내밀어 보지 못한 채 조용히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26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자영업 창업자의 47%는 3년 이내 퇴출되며, 10년 이상 같은 업체를 운영하는 비율은 25%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명 중 1명은 3년 안에 사업을 접는다는 얘기다. 10년 동안 연평균 37만명이 신규 창업에 나섰지만, 매년 34만명은 휴업하거나 폐업하고 있다.
창업자들 사이에 과당 경쟁이 펼쳐지면서 이익을 쪼개 먹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한파로 소비심리는 위축돼 가는데 창업자들은 계속 늘어나니, 1인당 가져가는 몫은 갈수록 줄어드는 셈이다.
노화봉 소상공인진흥원 조사연구부장은 “요식업·소매업의 경우 전체 소상공인의 50%를 차지하다 보니, 한집 건너 한집 있는 수준”이라며 “경쟁이 심해지면서 생활고를 호소하는 소상공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조용식 전국상인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소상공인 상당수가 생계형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있는데, 거대 자본한테까지 생계를 위협받으면서 벼랑 끝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체산업에서 차지하는 소상공인의 비중은 28.8%(2010년 기준)로 일본(12.3%), 독일(11.6%), 미국(7.0%)보다 크게 높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치인 17.5%보다도 11%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이재형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위원은 “영세사업체 등 소상공인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할 적정 이윤이 창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의료보험 등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장치 외에 이들을 보살펴 줄 지원 정책이나 방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소상공인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은퇴후 재취업이 힘든 상황에서 베이비붐 세대들이 창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진흥원은 1955~63년생을 일컫는 베이비붐 세대가 향후 3년간 150만명 이상 추가로 퇴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용없는 성장 속에서 취업을 포기한 청년 실업자들의 창업 러시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소상공인을 위한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소상공인들은 잠재적 시한 폭탄으로도 불린다. 상당수 소상공인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 창업한 사람들이기에 생태계가 무너질 경우 사회적 문제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가영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자영업간 경쟁 심화로 점점 버티지 못하는 소상공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대출로 사업을 시작했기에 앞으로 가계 부채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 부회장은 “소상공인 생태계의 붕괴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라며 “예방 차원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분류기준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여졌지만, 통상 같은 의미로 쓰인다. 소상공인은 광업과 제조업 건설업 운수업은 10인 미만, 그외 업종은 5인 미만인 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자영업자는 종사상 지위를 기준으로 자영업은 근로자를 1인 이상 고용하거나 자기 혼자 또는 무급가족 종사자와 전문적인 업을 수행하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