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울예대 부지에 'K팝 학교'…연극인 반발하는 이유는
by장병호 기자
2020.09.11 06:00:00
드라마센터 옆 심재순관에 SMI 설립
한국 연극사 상징적 공간 의미 퇴색 우려
남산예술센터 페관 문제 다시 수면 위로
연극계 "서울시·서울예대 입장 밝혀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남산예술센터가 있는 옛 서울예대 부지(서울 중구 예장동)에 K팝 아이돌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이 들어서기로 해 연극계가 반발하고 있다. 연극 극장인 남산예술센터도 올 연말 폐관을 앞두고 있어 한국 연극사의 중요한 공간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연극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외관(사진=서울문화재단). |
|
10일 연극계에서는 전날 SM엔터테인먼트가 종로학원하늘교육과 함께 서울 중구 남산에 위치한 동랑예술원 부지(옛 서울예대 부지)에 ‘SM 인스티튜트’(SM Institure, 이하 SMI)를 설립한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옛 서울예대 부지에는 드라마센터·예술관·심재순관 등 총 3개의 건물이 있다. 이중 드라마센터와 예술관은 서울시와 동랑예술원(서울예대의 학교법인)이 2009년 체결한 임대계약을 통해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공공극장 남산예술센터로 쓰이고 있다. SMI는 동랑예술원과의 임대계약을 통해 현재 공실로 남아 있는 심재순관에 들어선다. 내년 3월 개강을 목표로 오는 10월부터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계획이다.
연극계가 이번 사안에 반발하는 이유는 남산예술센터의 임대계약 만료 문제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상황에서 이러한 결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SMI가 남산예술센터 폐관 이후 드라마센터 건물을 K팝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쓸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심재찬 연출가는 “연극계에서 드라마센터의 역사성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고 있는데 동랑예술원 측에서 이런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연극계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무책임하고 공공의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드라마센터는 한국 연극사에 지니는 상징적 의미가 큰 극장이다. 극작가 겸 연출가 동랑 유치진(1905~1974)이 1962년 연극전용극장 건립 계획의 뜻을 품고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 정부가 제공한 땅에 세운 국내 최초의 현대식 연극 극장이다. 2009년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드라마센터의 연극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동랑예술원과 임대계약을 통해 남산예술센터로 재개관해 운영해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남산예술센터 임대계약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존폐 위기 논란이 불거졌던 남산예술센터는 지난 7월 말 서울시가 동랑예술원과 2020년 12월 31일 만료되는 임대계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폐관이 결정됐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연극계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연극평론가인 김미도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서울시와 동랑예술원의 협약에 따르면 임대계약 종료 6개월 전 계약 연장 또는 종료 여부에 대해 양측이 논의를 해야 하는데 서울시에서 그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더니 지난 7월 갑작스럽게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나왔다”고 밝혔다.
또한 김 교수는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연극계가 그동안 드라마센터에 제기해온 문제와 남산예술센터 운영 종료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연극계가 주장하는 것과 동랑예술원 측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 다르다”며 “서울시가 입장을 표명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연극계는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연극인 비상대책회의’를 꾸려 드라마센터 건물의 역사적인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난해 개최한 세 차례 토론회 과정에서 드라마센터가 있는 옛 서울예대 부지가 과거 조선통감부(조선총독부의 전신)가 있었던 땅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친일파로 밝혀진 유치진이 국가로부터 공공극장 설립을 목적으로 불하받은 땅을 사유화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남산예술센터 폐관 이후 드라마센터 건물의 운영 방향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동랑예술원 관계자는 “우리도 서울시에서 임대계약과 관련해 6월 말까지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7월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통보해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며 “드라마센터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