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육아]'혹시나? 역시나!'…수백만원짜리 제대혈은행 무용지물
by김보영 기자
2016.11.14 06:30:00
작은육아 2부 ''출산에서 돌잔치까지'' ③제대혈
민간 운영 가족제대혈, 전체 제대혈 보관 건수의 90% 차지
15년간 가족제대혈 54만5500건 중 치료용 사용 200건 그쳐
유핵세포수가 중요, 가족제대혈은 세포수 부족해 실효성↓
일부 은행 제대혈 치료 목적 이식 건수 부풀려 과장 광고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제대혈은 탯줄 및 태반에 존재하는 혈액이다. 혈액을 생성하는 조혈모세포와 연골·뼈·근육·신경 등을 만드는 줄기세포가 들어 있다. 백혈병을 비롯해 각종 암, 난치성 혈액질환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부모들이 수백만원을 들여 제대혈을 보관하는 이유다. 그러나 실효성은 무의미할 정도로 낮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의료계에서는 민간제대혈은행의 보관기준을 강화하는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제대혈 보관은 사용 주체에 따라 가족제대혈과 기증제대혈로 나뉜다. 가족제대혈은 기증자가 많게는 수백만원이 넘는 보관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대신 배타적 사용권을 가지는 일종의 개인보험이다. 민간업자가 운영하는 사설 제대혈 은행과 계약해 보관한다.
기증제대혈은 정부에서 설립한 제대혈은행이 무료 보관한다. 질병 치료나 의학 연구가 목적이기 때문에 제대혈 기증자와 기증자 가족의 배타적 사용권과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기증자나 기증자 가족이 난치병 등에 걸려 기증한 제대혈이 필요해질 경우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제대혈을 사용할 수 있다. 금액은 일률적으로 206만원이다. 2014년 10월부터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돼 조혈모세포 이식이 꼭 필요하다고 인정받은 환자들은 자기부담금이 10만 3000원~20만 6000원으로 줄었다.
보건복지부 ‘제대혈 관리 현황 통계’에 따르면 제대혈의 총 보관 건수는 2010년 35만 1500건에서 지난해 기준 59만 6496건까지 증가했다.
이중 민간에 위탁하는 가족제대혈이 2015년 기준 국내 전체 제대혈 보관 건수(59만 6496건) 중 54만 5500건(91.5%)을 차지했다.
현재 국내 제대혈 보관 업체는 보건복지부가 위탁한 서울시 제대혈은행을 포함해 18곳이다. 이 중 5곳은 기증제대혈 은행이고 5곳은 기증과 가족제대혈을 함께 보관하며 8곳은 가족제대혈만 보관한다.
가족제대혈의 보관비용은 보통 100만원 이상이다.보관 기간이 늘어날수록 비용이 늘어난다. 15년, 20년, 평생보관 세가지 상품이 일반적이다.
제대혈은행 민간업체 상위 4개사 내 보관비용을 살펴보면 15년을 기준으로 A사는 125만원, B사는 135만원, C사는 135만원, D사는 130만원이다. 보관 기간이 길어질 경우 비용은 더 올라간다. 20년 보관이면 평균 200만∼300만원이며 평생 보관 상품은 400만원 선이다.
심지어 일부 업체들은 보관 기간이 같은 상품도 제대혈 보관탱크의 밀폐도와 온도에 따라 기본형·안심형·프리미엄형으로 나눠 가격에 차등을 두고 있었다.
E사는 15년 보관상품을 기본형·안심형으로 나누고 있다. 기본형 가격은 130만원, 안심형의 가격은 150만원이다.
E사 관계자는 “보관 기간이 같아도 안심형 상품에 사용되는 제대혈 보관탱크의 밀폐도가 높고, 온도는 훨씬 낮기 때문에 보관 효과가 훨씬 높다”고 말했다.
작년 민간 제대혈은행을 통해 15년짜리 ‘프리미엄형’ 가족제대혈 보관 상품에 가입했다는 주부 현모(31)씨는“담당자가 기본형 보관 탱크는 밀폐도가 낮아 보관 과정에서 신선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말했다.
김동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유핵세포수가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하지 밀폐도나 보관온도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수백만원씩 주고 가족제대혈을 보관해도 이를 치료에 활용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제대혈 관리 및 연구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보관된 가족제대혈 54만5500건 중 치료목적으로 쓰인 제대혈은 200건에 불과하다. 전체 가족제대혈 보관 건수의 0.036%에 불과하다.
가족제대혈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조혈모세포 이식에 필요한 제대혈 안 유핵세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난치병 치료에 필요한 유핵세포수는 치료 받을 사람의 체중에 따라 결정된다. 통상 체중 1kg 기준 최소 1500만개의 유핵세포가 필요하다.
기증제대혈은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소 총 유핵세포수를 8억개로 규정하고 있다. 체중이 50kg 중반 정도인 성인이 치료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반면 가족제대혈은 유핵세포수가 1억개만 돼도 보관이 가능하다.
김동욱 교수는 “가족제대혈은 평균 유핵세포수가 많아야 3억~4억개 정도”라며 “체중이 20kg 이하인 미취학 아동정도나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부 민간 제대혈은행은 제대혈 이식 건수를 부풀리거나 의학적으로 부정확한 내용으로 부모들을 호도하고 있다.
한 민간 제대혈은행은 홈페이지에 국내 최초 939건의 제대혈 이식에 성공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이는 치료 목적 외 임상연구 건수까지 포함한 수치다. 실제로는 이 제대혈은행이 보관중인 제대혈 중 조혈모세포 이식 건수는 총 62건(6.6%)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기증제대혈 조혈모세포 이식(111건·11.8%)이거나 임상연구 목적( 766건·81.5%)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본인 제대혈을 이식받을 때 치료 효과가 가장 좋다고 홍보하는 것도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오일환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유전적으로 발병인자를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제대혈을 사용하면 질병의 재발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기증제대혈을 이식받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한 민간 제대혈 은행 관계자는 “학계에서 치료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연구를 끊임없이 진행 중”이라며 “은행들 자체적으로도 유핵세포수가 부족한 현 시스템이나 과장 광고 문제를 개선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