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카지노는 어떻게 우리 지갑을 터나
by오현주 기자
2016.10.19 06:07:00
인간 마음·심리 움직이는 ''공간설계''
중앙보단 가장자리가 편하고
직선 아닌 곡선 좁은 길서 편안함
돈 잃을 것 알면서도 찾는 카지노
빌딩앞 조용하다 골목에선 수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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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콜린 엘러드|372쪽|더퀘스트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발을 들이는 순간 가슴이 쿵쾅거린다. 등줄기로 신경 한 줄이 곤두서고 빨라지는 맥박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다. 전율이란 게 이런 건가. 즐거움을 넘어선 강렬한 쾌락을 뒤집어쓰니 비로소 인간이 욕망의 산물이란 걸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감정이 아니다. 과학이다. “심박수와 피부전도를 급격히 상승시키고 사람의 뇌를 거부할 수 없는 흥분에 빠뜨리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돈을 잃을 걸 뻔히 알면서도 카지노로 몰려가고, 지르고 나서 밀려들 후회가 빤히 보이는데 굳이 쇼핑몰에서 카드를 긁어댄다. 현실세계가 아니란 게 명백하지만 테마파크에 들어서면 자동 무장해제된다. 도대체 이 모두를 한 방향으로 줄 세우고 통째 뒤흔드는 그것이 뭔가. ‘공간설계’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직선보다는 곡선으로 휜 카지노와 쇼핑몰의 통로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하고, 자연을 모방한 인테리어가 마음을 느긋하게 만들어서다. 하늘에 닿을 만큼 치솟은 롤러코스터가 감정도 그만큼 끌어올리고, 심플한 공간배치에 싫증을 냈더니 VR을 씌워 4D 체험실로 떠밀었기 때문이다. 공간이란 게, 환경이란 게 사람의 생각과 감정, 신체반응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신경과학자이자 디자인컨설턴트인 저자 콜린 엘러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가 드라마틱한 상황이 벌어지는 이 판을 토대로 ‘공간과 마음의 상호작용’에 대해 질문과 답을 내놨다. 프랑스작가 알랭 드 보통 식으로 말하면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에 대한 성찰적 분석이다. 우선 공간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간파하려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단다. ‘인간은 어디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가’를 이해하는 것. 만약 여기에 건축을 결합한다면 공간과 인간의 뇌, 또는 심리의 역학관계를 조명할 수 있다. 바로 신경건축학이다. 저자는 이를 심리지리학이라고 부르며 인간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어떻게 만들었고 역으로 그 두 공간이 인간을 다시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그간 건축이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물음에 뇌파와 시선감지기, 위치추적장치 등을 동원해 나름대로 만든 답안이다. 벽돌이나 모르타르가 사람의 마음과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는지 거대한 건축물 앞에선 왜 그리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빌딩 앞에선 ‘조용’ 골목에선 ‘수다’
공간이 변하면 사람의 마음도 달라진다는 게 핵심 논지다. 책은 그 비밀유지에 관한 내용이다. 가령 사람들은 고층빌딩이 들어선 큰길보다 오래되고 낮은 건물이 올망졸망한 골목길에서 더욱 활발한 태도를 보인단다. 대형빌딩 앞에선 움츠러드는 반면 주택가 좁은 길에선 수다스러워지고 적극적으로 된다는 거다. 왜 그럴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직선보다 곡선에서 편안함을 느껴서란다. 굽은 길모퉁이에선 앞으로 다가올 것에 대한 호기심도 발동한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정중앙 테이블로 직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가장자리로 향한다. 변두리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란다. 이른바 ‘사냥하지 않고 사냥할 수 있는 위치’, 자연의 기하학을 갈망하는 것이다.
미국작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나 나왔을 법한 내용에도 근거가 있다. 창밖으로 자연이 내다보이는 병실의 환자가 빡빡하게 벽돌만 들어찬 병실의 환자보다 치유가 빠르다는 거다. 인간의 본능이 자연에 끌리게끔 프로그래밍 돼 있단 소리다.
▲욕망과 전율의 실험실 ‘쇼핑몰·카지노’
대형마트 입구에 과일을 배치하거나 진입로에 화려한 광고판을 세우는 데도 까닭이 있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색채의 미학이 사람의 시선을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창문과 시계가 없는 백화점의 공간구성도 다르지 않다. 어디에도 정신을 뺏기지 않고 오로지 쇼핑에만 몰두하게 하는 거다. 밀폐된 장소의 압박감도 무시 못 한다. 무엇이든 사야 한다는 심리적 긴장감으로 내몬다.
외부에서 볼 땐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쇼핑몰 내부는 별천지다. 완벽한 방음과 냉난방, 청결하고 섬세한 실내장식, 거울과 반짝이들. 쇼핑몰에 머무는 동안 의사결정은 중독에 관여하는 뇌의 연결망이 주관한단다. 충동구매가 저절로 생기는 거다.
카지노 역시 영악한 공간배치를 감추고 있다. 입구를 곡선으로 휘게 해 내부가 안 보이게 한 건 가장 초보적이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신세계에 잠시 현기증. 이후 화려한 불빛과 강한 기계음이 심장박동을 끌어올리고 일확천금의 욕망이 솟구치게 한다. 그렇게 찾아간 슬롯머신은 넓은 도박장에서 자신을 은폐하면서도 주변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게 한 최상의 장치다. 넓고 휑한 중앙보다 좁은 구역을 빙 둘러 소규모 군집을 이룬 ‘신의 배치’인 셈이다.
이 모두는 도박장이 가진 원초적 목표실현을 돕는다. 돈을 잃는 데도 따고 있다는 환상 속에 ‘오래’ 머물게 하는 것. 카지노의 공간은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끼자루를 썩게 하는’ 비현실적 분위기가 특징이다. 승리로 위장한 패배에 중점을 둔 전략이다.
▲불안·권태·고독을 제어하는 도시설계란
저자의 공간성찰은 비단 현상분석에만 머물지 않는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도시든 사람이 들어서는 공간을 좀더 인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여지를 함께 던진다. 저자가 볼 때 좋지 않은 도시설계는 ‘권태와 불안을 확산하는’ 구조다. 지루하다 못해 권태감이 축적되면 불안감과 공격성을 키울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도시의 좋은 거리’가 필요하단다. “평범한 보행자가 시속 5㎞로 걸으면서 5초에 한 번꼴로 흥미로운 장소를 볼 수 있도록 설계하는” 거다.
흔히 도시라는 데 늘어선 은행, 법원, 비즈니스타워 같은 대규모 일체형 건물 앞에서 보행자는 절대 흥미로울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렇다고 큰길과 대형건물을 모조리 골목의 작은 집으로 바꿀 수야 없지 않나. “건물 하단 3m 정도만 외관과 물리적 구조를 바꿔도 도시를 이용하는 방식에 극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이런 논리에서 나왔다.
최근 화두가 된 ‘스마트도시’에 대해선 어찌 생각할까. 기대보단 우려가 크다. 인터넷으로 모든 공간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도시에선 어른조차 아이 취급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거라고 했다. “거대한 분수령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선 기분”이라고. 심리학을 건축설계에 적용하더라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새 도구에는 매료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도구를 제약 없이 사용해 만든 세계에는 의문이 없을 수 없다고 했다. 어차피 그 주역은 사람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맞다. 흙과 바위를 옮기는 데 몇년씩 걸리는 도시의 설계에서 얻은 정신적 풍요를 단추 몇개, 스위치 몇번으로 챙긴다는 게 가당키나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