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감청수사 협조 재개..익명화 방식이 현재로선 최선
by김현아 기자
2015.10.11 09:57:55
수사대상 외에 대화방 사람들은 익명화해서 전달
대화방 사람들 실명 자료는 영장 집행 시기 중에는 수사기관의 장 공문으로
다음 정치적 공세로 고객정보 전달 비판도..전문가들 "익명화 방식이 현재로선 최선..법 개정 필요"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카카오(대표 임지훈)가 1년 만에 입장을 바꿔 카카오톡에 대한 국가의 감청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히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카카오는 감청 당사자외에 카톡방에서 글을 주고 받았던 다른 사람들의 정보는 익명화(블라인드)한 뒤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실시간이 아닌 과거 기록에 대한 것은 감청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과 △카카오가 잇따른 포털 뉴스 편집 등에 대한 여권의 규제 공세와 김범수 의장의 불법 도박 의혹에 밀려 고객의 인권을 무시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임지훈 단독 대표 체제 출범이후 포털 ‘다음’의 색깔을 지워가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불법 도청과는 다른 국가의 합법적인 감청 요구에 카카오가 계속 거부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청과 감청을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감청은 국가가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으로 테러나 극악 범죄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7명은 모바일 메신저로 카톡을 쓰는데 카톡을 수사의 예외대상으로 계속 둘 순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날로그 시대와 다른 디지털 기술 발전에 맞는 새로운 감청법(통신비밀보호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영장주의나 감청 등의 제도를 디지털 시대에 맞게 바꿔, 국민의 디지털 프라이버시 인권과 국가의 합법적인 수사권을 동시에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6일 김진태 검찰총장은 국감에서 카카오와 통신제한조치 재개 방식에 대해 실무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영장으로 카톡 감청을 요구하면 카카오는 △단체대화방(단톡방)의 경우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에 대해서는 익명(블라인드)으로 처리한 뒤 수사기관에 제공한다. 이후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익명화 처리된 사람들 중 범죄 관련성이 있는 사람이 나올 경우에 한해 대상자를 특정해 전화번호를 요청한다.△이 때 관할 수사기관장의 승인을 받은 공문으로 요청해야 한다.
| 좌로부터 다음카카오의 카톡과 네이버 라인, 다음카카오 마이피플,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온. 글로벌 시장 조사 회사 TNS는 10월 6일 전 세계 50개국 6만 50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이용자의 디지털 태도와 행태를 연구한 ‘커넥티드 라이프 2015’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는 다양한 IM플랫폼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가운데 한국 응답자의 73%는 ‘카카오톡’을 매일 사용한다고 밝혔다. ‘라인’은 아시아의 조사 대상 국가 중 일본, 대만, 태국에서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로서 타 플랫폼을 제치고 가장 많은 응답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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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이 이번에 도입한 새로운 감청수사 협조방식은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언론법학회 등에서 논의된 바 있다.
당시 디지털 정보에 대한 싹쓸이식 수사의 문제점이 공론화된 가운데 신경대 오길영 교수는 “1인의 감청대상자때문에 희생되는 수십 또는 수백명의 권리를 생각해보라. 결국 ‘그 상대방’도 특정되어야 할 것이며, 특정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구분되는 형태로 익명화’(예를 들어, 대화자 A, 대화자 B.. 등)되어 제공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라고 지적했다. 카톡이 이번에 취한 방식은 사실상 이를 준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 교수는 “익명화를 전제로 한 수사기관 자료 제출에 대해 아이디어를 냈다”면서도 “하지만 별도의 추가 영장이라는 요건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협의 과정에서 검찰에 밀린 것 같다”고 밝혔다.
카카오 관계자는 “추가 정보 제공에 대해서도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미 영장이 발부된 사건 수사에 추가 영장을 받는 것이 법리적으로 맞지 않아 영장에서 제시된 통신제한조치 기간 중에는 수사기관장 공문에 따라 진행하고, 영장 제시 기간 이후에는 영장을 재청구토록 했다”고 설명했다.
통비법에 따라 검경 등 수사기관이나 국정원·군 수사기관에 제공되는 수사자료는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에 대한 ‘감청(통신제한조치)’△인터넷로그기록·착발신 통화기록 같은 ‘통신사실확인자료’△이용자의 이름이나 주민번호 같은 ‘통신자료’가 있다.
감청은 법원의 허가서(영장)나 수사상 필요한 긴급 감청의 경우 직후 검사의 승인서가 필요하고, 통신사실 확인자료나 통신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카톡이나 이동전화의 경우 실시간 감청 설비가 없어 감청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공식 집계만 봐도 2014년 이동전화 감청은 ‘0’건인데 반해, 유선전화는 4098건, 인터넷은 1748건 감청이 이뤄졌다.
국가의 불법 감청 의혹과는 별개로 ‘실시간’ 합법 감청은 기술적인 문제로 이동전화나 카톡에서는 원래는 불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카톡은 이번에 비실시간을 전제로 합법 감청에 협조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
| ▲< 최근 3년간 전기통신사업자의 감청협조 현황 > 군수사기관 등 : 군수사기관, 해양경찰청, 사법경찰권이 부여된 행정부처(단위: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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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장주의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비판 역시 여전하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유환우 판사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하면서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정진우 노동당 전 부대표의 결심공판에서 압수수색된 카카오톡 대화기록은 위법 수집증거이라며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경찰이 카카오에 영장의 원본을 제시하지 않고 팩스로 보냈으며 사후에라도 영장의 원본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압수물 목록을 교부하지도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검찰이 일단 익명화 자료제출 방식을 수용한 것은 일부 진전된 것이나, 정보가 섞여 있는 디지털의 속성상 압수수색 영장 자체에서 수사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만을 색출해 내는 방식이 고안되고 제도화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법의 헛점은 또 있다. 국정원의 스파이웨어 프로그램(RCS) 도입에 관여한 통신장비 업체 나나테크는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통비법에 따르면 민간이 인가받지 않은 감청설비를 도입하면 5년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돼 있는데, 통비법상 감청설비의 정의 조항에 소프트웨어가 포함돼 있지 않아 RCS는 현행법상 감청설비가 아니다.
경실련 경제정의센터 김보라미 변호사는 “통비법은 만들어진지 20년이 돼 예전의 유선통신 시절에 맞춰 감청설비 조항이 만들어졌다”면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