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제로` 신한금융..라회장의 선택은?
by원정희 기자
2010.10.10 10:56:35
`중징계` 라 회장 `결단` 불가피
경영공백 최소화 위한 후계구도 모색 시급
신한 "내년 주총까지 대표권 행사 필요..최소한의 후계 구상"
[이데일리 원정희 이준기 기자] 신한금융지주(055550)의 앞날이 `시계제로`다.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에 대해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방침이 통보됐고, 검찰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어 사실상의 경영진 공백에 이은 `신한금융 3인방`의 불명예 동반퇴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라 회장으로선 오는 11월초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징계수위가 확정될 때까지 본인의 거취는 물론이고 후계구도 구상도 끝마쳐야 할 것으로 금융계는 예상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 7일 밤 라 회장에 대해 금융실명제법 위반 등을 이유로 중징계 방침을 통보하자 미국 출장중이었던 라 회장은 급거 귀국길에 올라 다음날(8일) 저녁에 귀국했다. 귀국하자 마자 시내 모처에서 관련 임원과 대책회의를 했고, 주말내내 실무진과 함께 소명자료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 회장이 미국 출장중 이같은 소식을 접하자마자 귀국길을 선택한 것만 봐도 현재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융권은 라 회장이 받게 될 징계는 문책경고보다 높은 직무정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신한금융은 소명기한인 오는 18일까진 소명에 집중하고, 징계수위를 낮추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문책경고를 받는 경우 연임이 불가능하지만 현직을 유지하는데는 문제 없다.
신한금융 고위관계자는 "사장도 직무정지인 상태서 최소한 (라 회장이)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어차피 내년 주주총회도 불과 4개월 남짓 남겨둔 상태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지배구조를 구상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융통성(?)`을 발휘해 줄 것을 신한금융측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신한금융사태 이후 라 회장에 대한 재일교포 주주들과 직원들의 신임은 물론이고 리더십도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태다. 당국의 중징계까지 확정되면 퇴진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황영기 전 KB금융(105560)지주 회장이 우리은행장 재직시절의 투자로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받은 이후 KB금융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역시 문책경고를 받은 이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게다가 라 회장을 비롯한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에 대한 검찰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신 사장에 대한 배임 및 횡령 혐의에 대한 수사는 신 사장 등 핵심인물의 조사만 남겨두고 있다. 15억원의 자문료 사용과 관련해선 신 사장은 물론이고 라 회장, 이 행장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언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 행장은 재일교포 한 주주로부터 받은 5억원의 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자칫 신한 3인방 모두 사법처리를 받게 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각에선 예견하고 있는 상태다.
라 회장으로선 선택의 폭도 넓지 않고,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다음달 초 제재심까지는 라 회장에 대한 소명에 집중할 것"이라며 "이사회 등은 제재심에서 징계수위가 확정된 이후에나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징계가 확정되기 이전까지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라 회장으로선 제재가 확정되면 그야말로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식물회장`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제재심 전후로 본인의 거취는 물론이고 후계구도에 대한 구상도 끝마쳐야 할 판이다.
라 회장측의 희망대로 문책경고로 수위가 정해지고 후계구도 정립이라는 명분으로 내년 3월 주총까지 자리를 유지하겠다고 해도 검찰 수사 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직의 혼란만 더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살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선 라 회장은 물론이고 이미 이사회로부터 직무정지를 당한 신 사장의 동반 퇴진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행장은 신한금융에 남아 후계구도를 이어가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행장도 고문료 15억원중 일부분과 이와 별도로 5억원의 사용 의혹까지 받고 있다. 따라서 이들 3인의 동반퇴진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중론이다.
지난 9월2일 신한은행이 신사장을 배임 및 횡령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촉발된 `신한사태`가 한달 넘게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신한금융 직원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런 판국에 3명 모두 다 관둬야 하는 것 아니냐"며 푸념섞인 목소리를 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번 기회에 CEO 물갈이는 물론이고 모든 것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아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 이상 `라응찬-신상훈-이백순` 구도로는 신한금융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는 의미인 셈이다.
신한금융 주식 100만주 이상을 가진 밀리언클럽에 속한 한 재일교포 주주도 "분명한 것은 라 회장은 앞으로 (신한금융과 관련한)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다"며 "후계자를 결정한다든지 이사회를 주도해 뭔가를 처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라 회장으로선 제재심 직후까지 경영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구상을 끝마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이 시기를 놓치는 경우 외부 권력의 힘을 등에 없은 인사들로 모든 자리가 채워지거나 지난해말 KB금융 처럼 장기간의 경영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신한금융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포스트 라응찬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재일교포 주주들도 라 회장이 더이상 후계구도를 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만큼 나름대로 과거 신한 출신 인사들 중에 적임자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 사장의 직무대행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류시열 신한금융 비상근이사와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가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금융통`인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 차관과 `일본통`인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도 거론된다.
내부 출신 인사 중에서는 이인호 전 신한금융 사장,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 홍성균 전 신한카드 사장, 고영선 전 신한생명 사장, 최범수 신한금융 부사장, 위성호 부사장 등이 모두 공석이 될 CEO 후보군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