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명수 기자
2001.02.21 08:54:22
정부투자기관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직장인 김영기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6월에 3년전에 가입했던 비과세저축 3000만원의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목돈이 생기는데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김씨는 3월 중순 전세를 옮겨야한다. 아파트 전세값이 들썩인다는 신문, 방송의 보도도 있고해서 서둘러 전세를 구하러 다녔다. 의외로 집은 쉽게 구해졌다. 월세로 나온 집이었는데 최근 금리가 떨어지면서 월세 이자가 낮아지자 주인이 전세로 돌린 것이다. 월세방이 전세로 바뀌면서 주인이 전세금을 높게 부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사는 집 전세금에다 1500만원만 보태면 됐다.
저축만기가 6월이니까 3개월만 은행신용대출을 받기로 했다. 사이버 대출을 신청하자 곧바로 대출허가가 떨어졌다. 은행수신금리는 6%대로 낮아졌는데 실제 대출금리는 11%가 넘었다.
은행이자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3개월간 이자나 충당할 생각으로 따로 모아둔 500만원으로 주식에 투자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6월에 저축을 타고 본격적으로 주식에 투자하기 전에 시험삼아 돈을 넣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김씨가 주식투자를 생각한 것는 은행상품으로는 도저히 성이 차지 않기 때문이다. 이자를 제하고 나면 실제 은행금리는 6%도 되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데이트레이딩을 할 수는 없고 소액이라 어디에 맡기기도 뭐하고. 김씨는 우량주인 삼성전자나 포철을 사서 묻어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가를 알아보니 그것도 아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기가 죽으면서 게걸음만 치고 있었다. 단기간 반도체 전망도 밝지 않아 보였다.
마침 직장의 한 선배로부터 프리코스닥 투자를 해보자고 제의가 들어왔다. 선배 친구가 하는 IMT2000관련 통신기술회사였다. 그 선배는 99년 코스닥 열풍이 불 때 프리코스닥으로 재미를 봤던 터라 귀가 솔깃했다. 문제는 사업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 뭘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고 투자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결국 김씨는 여유돈 500만원을 투신 MMF에 넣어두기로 했다. 6월에 저축을 타기전에 주식시장에 변화가 오면 주식으로 옮겨탈 생각이다. 6월이후에도 대출 상환후 남은 1500만원을 일단 MMF에 넣었다가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사실 김씨는 MMF에 아픈 기억이 있다. 99년 대우사태가 터졌을 때 한동안 MMF에 자금이 묶여 맘고생이 많았다. 그 이후 투신사 근처에도 가기가 싫었지만 지금은 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MMF를 선택하기로 했다.
◇"회색지대"로 몰리는 자금
김씨의 고민은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가 전세를 옮기는 예에서 보듯이 현재 부동산 시장은 정체상태다.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는 달리 부동산으로 자금이 흘러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우차 정리해고 은행합병 등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100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부동산 시장은 매물로 홍수를 이룰 것이다.
은행수신금리는 낮아지는데 상대적으로 개인대출은 받기가 쉽다. 은행입장에서 개인대출은 아직도 마진이 높은 손쉬운 영업수단이다. 주식시장은 아직 회복기에 들어서지 않았다. 시중 자금이 주식시장 주변에 머물면서 기웃거리는 수준이다.
결국 MMF는 김씨처럼 기회를 봐서 주식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 알맞는 "회색지대"다. 수시입출금이 가능하면서 은행상품에 비해 금리도 높기 때문이다.
◇저금리와 자금이동
올해들어 투신 MMF 수탁액은 매주 2조원 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금융권의 자금이동 상황은 극적으로 변했다. 대우사태이후 투신권은 자금이탈에 전전긍긍했으나 최근에는 MMF로 자금이 너무 들어와 기관자금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