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80%'보다 '알바 정규직화'에 분노하는 이유

by장영락 기자
2020.06.24 05:45:00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 "중단하라" 靑청원까지 등장
자회사 고용, 기존 보수서 평균 3.7% 인상…기존 정규직과 처우 달라
공기업임에도 비정규직 80% 넘는 인력 구조, 그동안 문제로 지적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과 관련해 ‘공기업 정규직 전환을 중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해 논쟁이 뜨겁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극단적인 비정규직 활용이 현 정부 비정규직 철폐 방침과 충돌하며 이번 논란으로까지 이어진 모양새다.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이 등록됐다. 이 청원은 등록 하루도 안돼 참여인원 10만명을 넘어서는 등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기업들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기존 정규직들이나 취업준비생들에게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이 청원 요지다. 이 청원인은 특히 취업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떠돈 공항공사 내부 비정규직들의 대화 내용을 보고 청원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의 대화방 내용은 출처가 불분명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 캡처본으로, 아르바이트로 공항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이번 정규직화로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게 돼 기쁘다’는 취지의 발언, 공채에 수년을 들인 취업준비생들을 비하하는 발언 등을 한다. 이 대화 내용은 공사가 전날 여객 보안검색을 담당하는 협력사 직원 1902명을 직접 고용하는 등 모두 9785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뒤 유출돼 온라인 상에서 빠르게 퍼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문제의 대화내용이나 청원인의 주장과 달리, 이번에 공사가 정규직 채용하는 인력들은 관리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존 공사 정규직과 다른 처우를 받는다.

공사에 따르면 이번에 직접 고용되는 보안검색요원은 임금체계를 별도로 적용받는다. 공사 설립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편입되기 때문에 여기서 같은 업무를 하는 직원들과 동일 수준 임금을 받게 되며, 이에 따라 평균 3.7% 인상된 보수를 받게 될 뿐이다.

이들이 평균 연봉 8000만원이 넘는 공사 정규직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고, 그동안 정규직화를 줄기차게 요구했던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조 역시 그런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공항 비정규직 노조는 하청이나 파견 형태로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데 따른 부대비용(파견업체 수수료 등)을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려주고, 고용안정을 확보해줄 것을 요구했을 뿐이다.



공사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공사 측도 기존에 공사에 취업하려는 청년층이 보아검색, 청원경찰 등 비정규직 직무에 지원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번에 직접고용하게 되는 일자리는 많은 청년들이 기대하는 ‘본사 공채 정규직’과 별 관련이 없다는 설명이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처럼 정확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이번 사태는 다른 곳도 아닌 인천공항 정규직과 관련된 사안이라 더욱 논란이 뜨거워진 것으로 보인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공기업 가운데서도 연봉 등 처우가 상대적으로 좋아 대표적인 취업준비생 선호 기업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공기업이 주는 고용상 안정성과 이른바 대기업에 준하는 처우가 결합된 근무환경 때문에 공항공사에 대한 선망이 상당하다. ‘그런 좋은 직장에 아르바이트나 하던 사람들이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 이번 논란 핵심 질문인 셈이다.

그러나 공사의 이같은 탄탄한 직원 복지와 건실한 경영이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 이후 극단적인 비정규직 중심 인력 운영을 한 것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이번 사태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공항을 찾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하는 이벤트를 벌인 것도 인천공항이 공기업임에도 사기업들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든 ‘비정규직 남용’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60여개 하청업체에 고용된 1만명의 공항 비정규직은 인천공항 전체인력의 80%를 넘어 90%에 가까운 수준이다. 공사는 검색보안 등 중요 보안 업무까지 외주화해 비용절감을 도모했고, 이같은 노력 덕인지 국제공항협의회(ACI)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2017년까지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비정규직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늘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파견업체만 바꿔서 계약서를 갱신하는 관행이 자리잡았고, 이 때문에 인천공항 비정규직들은 근속수당 등 정규직이 누리는 각종 혜택에서 배제돼 왔다. 이에 따라 수년씩 일한 청소 노동자들이 한 번도 임금 인상을 받지 못한 사례가 나와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이처럼 인천공항 노동자의 절대다수인 비정규직들이 그동안 받은 차별에는 대부분 무관심했지만, 이들의 정규직화 소식에는 놀라울 정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인천공항 검색 현장. 사진=연합뉴스
비정규직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선된 문 대통령 임기가 3년을 넘어섰지만 인천공항 사례에서 보듯 여전히 노동시장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사안으로 남아있다. 인천공항 뿐 아니라 한국도로공사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문제로 장기 노사분규를 겪었다.

여기에 이번 청원이 청와대 답변 기준선인 20만명 참여를 충족시킬 것으로 보여, 정부 역시 비정규직 정책에 대해 여론을 설득시킬만한 해답을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