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스' 대신 '디펜드', 요리 대신 간편식…급변하는 소비시장

by김무연 기자
2020.02.28 06:30:00

인구구조 변화에 뜨는 산업 지는 산업
1인 가구부터 은퇴세대까지 요리 대신 HMR
포장김치 수요도 증가…조미료·장류는 감소
유한킴벌리, 시니어 시장에 눈독… 디펜드 매출 증가
LG생활건강·아모레도 시니어용 제품 개발 및 출시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라 유통 산업 구조가 전면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1인 가구와 젊은 신혼 부부는 물론 은퇴부부도 요리를 하기 보다는 가정간편식(HMR)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아이가 있는 맞벌이 가정에서도 밀키트(Meal Kit·손질된 식재료·양념·요리법 등을 담은 세트) 등 HMR를 자주 이용한다.

은퇴했지만 구매력을 지닌 베이비붐 세대, 일명 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fe) 세대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화장품, 패션 용품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건강에도 관심이 많아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성장에도 일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출산으로 위기에 처한 분유, 기저귀 업체들도 시니어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표=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2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8년 국내 HMR 시장 규모는 3조3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4.7% 늘어났다. 2010∼2015년 5년 동안 연평균 14.3% 성장했으며 2015∼2017년 2년 동안은 연평균 25.3%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대표적인 간편 식품인 CJ제일제당의 즉석밥 ‘햇반’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총 누적 매출 3조원, 누적 판매량 30억개를 돌파했다.

품을 들여야 하는 요리를 하기보다는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려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1인 가정의 경우 대량의 식료품을 사는 것이 비효율적인데다 요리하는 시간도 줄이려는 목적으로 HMR를 이용하고 있다”면서 “은퇴한 남성들도 아내에게 식사를 요구하기 보단 직접 해결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HMR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야 하지만 시간이 부족한 취업 주부나 은퇴 가정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HMR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자체 프리미엄 HMR 브랜드 고메이494의 월평균 매출은 지난해와 비교해 56% 신장했다. ‘고메이494 강진맥우 꼬리곰탕 HMR’의 경우 첫 출시된 2018년과 지난해 모두 입고 2개월 만에 전량 완판됐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고메이 시리즈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식재료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특히 육아 중인 부모,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은 고객 등이 고메이494 브랜드의 충성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김치도 간편하게 즐기는 추세다. 포장김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닐슨코리아가 집계한 소매점 판매 통계에 따르면 포장김치 매출액은 2012년 1510억원에서 2018년 2526억원으로 67% 증가했다.

반면 요리에 필요한 조미료 및 장류 수요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이 생산하는 조미료 ‘다시다’의 소매점 매출액은 2012년 702억원에서 2018년 492억원으로 30%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음식 간을 맞추는데 주로 사용되는 간장의 매출도 소폭 감소했다.



(왼쪽부터)유한킴벌리의 ‘디펜드’, 일동후디스의 ‘하이뮨’, 매일유업의 ‘셀렉스’.(사진=각 사)
출산율 감소로 위기에 빠진 분유·기저귀 제조업체도 오팔세대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기저귀 시장 점유율 1위인 유한킴벌리는 요실금 전문 브랜드 ‘디펜드’를 출시하며 성인용 기저귀 사업에 뛰어들었다. 디펜드는 2012년 충주공장에 제조설비를 투자해 본격 양산에 들어간 이후 연평균 두 자릿수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2년간은 연간 20%가 넘는 매출 신장세를 보여왔다.

일동후디스는 지난 14일 산양유 단백질을 함유한 성인 건강 영양식 ‘하이뮨’을 출시했다. 남양유업은 중장년 전용 우유 ‘하루근력’의 스틱 제품을 선보였으며, 매일유업도 지난해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 등을 강화한 영양식 브랜드 ‘셀렉스’를 론칭하며 감소한 성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

뷰티 시장에서도 오팔세대의 구매력이 강해지고 있다. 지난해 현대백화점과 현대아울렛에서 60대 이상의 화장품 매출은 전년 대비 9.1% 늘었다. 이에 따라 패션·뷰티업계도 오팔세대를 겨냥하고 나섰다. LG생활건강은 거칠어진 중·노년층 남성의 피부를 윤기 있게 가꿔주는 ‘꽃 중년 만들기’ 제품 ‘후 군자양’ 2종을 출시했다. 아모레퍼시픽 또한 분당서울대병원과 항노화 솔루션 개발 공동연구에 대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은 오팔세대의 등장은 건강기능식품 시장 성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건강기능식품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다 판매 채널도 다양해 비교적 구매가 쉽고, 웰빙 트렌드의 확산·오팔세대의 등장과 맞물려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 1조4820억원 수준이던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2018년 2조5220억 수준으로 70% 급성장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오팔세대를 필두로 시니어 세대가 시장의 주축으로 떠오를 것이라 전망했다.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오팔세대는 전후 세대로 숫자가 많은데다 경제 성장의 주역들로 구매력까지 갖췄다”면서 “오는 2026년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만큼 현재 세부시장에 불과한 시니어 시장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앞글자를 딴 조어로, 활동적인 삶을 즐기는 노년층을 뜻한다. 주로 베이비붐 세대인 1955~1963년생을 의미한다. 이들은 전후 세대로 출생률이 높아 인구수도 많은데다 경제 성장기를 함께해 보유 자산이 많은 만큼 구매력도 높다. 오팔세대는 여가 활동을 즐기면서 젊은이들처럼 소비한다. 또한 자신을 가꾸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