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만원에 셔츠 12벌, 그림 1점…'구독경제로 한달살기'

by이성웅 기자
2020.01.10 06:45:00

[일상 파고든 구독경제]②30대 박 과장의 구독경제 일상
매주 새 와이셔츠 받아 입어…관리도 필요 없어
면도날·생수·도시락·애견용품까지 정기배송
먹고 입고 집 꾸미고 취미생활까지 'OK'…비용은 日 2만원꼴

[이데일리 이성웅 기자]혼자 사는 30대 남성 직장인 박 과장의 하루는 현관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침 7시, 박 과장은 현관문을 열고 밤사이 배송된 와이셔츠와 물, 도시락을 집안으로 들여놓는다.

박 과장은 출근할 때 입는 와이셔츠를 따로 사지 않는다. 매일 아침 셔츠를 고르고,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와이셔츠 정기구독 서비스를 알게 된 후 이 같은 시간이 절약됐다. 매주 3장씩 깨끗하게 세탁돼 다림질까지 마친 셔츠가 배송 온다. 다 입은 셔츠는 문 밖에 내다놓으면 업체에서 알아서 수거해간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한 달에 5만4000원 꼴.

물 역시 정기 배송해 먹기 시작했다.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지만, 한 달에 1만8800원이면 530㎖ 생수 40병을 배송 받는다. 충분히 마시고도 남을 양이다. 게다가 정기 배송을 신청하니 60병을 무료로 줬다.

물건을 들여놓고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박 과장은 최근 매일 사용하는 면도날도 정기 배송받기 시작했다. 유명 브랜드의 면도날보다 저렴하면서도 성능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2주에 1개씩 바꾼다고 가정하면 2개월에 4개들이 한 팩을 사용하는 셈이다. 가격은 8900원에 불과하다.

씻고 나온 뒤 새로 들여 놓은 생수를 전기 포트에 넣고 물을 끓인다. 한 달에 한번 구성을 바꿔 배송 오는 차를 끓여 마시기 위해서다. 매달 서너 종류의 차를 설명과 함께 배송해주기 때문에 아침마다 기분에 맞춰 차를 끓여 마실 수 있다.

모든 준비를 끝낸 후 아침에 들여놓은 도시락을 들고 출근을 한다. 최근 체중 관리를 시작한 박 과장은 현미밥과 메인 요리로 구성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한 달 구독비용은 17만원이지만, 계약기간을 늘이면 할인 폭이 커진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외이셔츠 정기구독 서비스 ‘위클리 셔츠’, 미술품 정기구독 서비스 ‘핀즐’, 주류 정기구독 서비스 ‘술담화’, 오설록의 차 정기구독 서비스 ‘다다일상’(사진=각 사)
저녁 7시, 일을 마치고 귀가할 때도 문 앞에서 짐을 한가득 챙겨 들어온다.

이날은 마침 한 달에 한번 그림이 정기 배송되는 날이다. 한 달에 2만8000원만 내면 매달 유명 작가의 그림이 날아온다. 그림이 바뀔 때마다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반려견 ‘똘이’를 위한 간식과 장난감도 정기 배송을 선택했다. 한 달에 3만을 내면 8만원 상당의 간식과 각종 용품을 받아볼 수 있다. 수의사가 직접 상품 구성을 기획하기 때문에 소화 불량을 겪는 똘이에게 특화된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똘이의 간식을 챙겨준 뒤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밥은 따로 하지 않고, 정기 배송 받는 즉석밥을 이용한다. 정기배송을 신청하면 5% 할인받을 수 있다. 여기에 주 2회 배송 오는 국과 반찬을 데워 저녁 밥상을 차린다.

저녁을 먹은 후 집안일을 마치면 비로소 한숨 돌리는 시간이다. 박 과장은 최근 미국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한 달에 9500원이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Over The Top·OTT) 서비스로 다양한 미국 드라마를 볼 수 있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매달 두병씩 배송 오는 전통주 두어 잔에 함께 오는 안주를 곁들이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지금까지 가상인물인 박 과장의 하루를 통해 생활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온 구독경제를 살펴봤다.

박 과장이 구독경제로 의(衣)와 식(食)을 해결하는 데 한 달에 들이는 돈은 약 60만원이다. 하루 2만원 꼴이다. 박 과장의 경우 일상 대부분을 구독경제로 해결하도록 설정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적게 들 가능성이 크다.

외국계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올해 세계 구독경제 시장이 5300억달러(약 615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상 사례에서 박 과장이 이용한 구독경제 서비스는 극히 일부분이다. 국내 구독경제 시장은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이미 옷이나 먹거리 등 생필품을 넘어서 취미, 꽃, 침구류, 가전제품에 심지어 자동차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구독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다. 박 과장의 사례 이상으로 생활 속 모든 소비가 구독경제로 대체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