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킹맘]초등생 부모 10시 출근…정부·기업 팔밀이에 ‘유명무실’

by김보영 기자
2018.03.13 06:30:00

정부 입학돌봄대책발표…10시출근·근로시간단축 지원
발표 한 달 지나도록 감감무소식…비난 민원만 쇄도
워킹맘 1만 5000명, 초등학교 신학기 앞두고 직장에 사표
저출산위 "기업 참여 확대하도록 보완방안 추진할 것"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발표 뒤 한 달이 지나도록 공문은 커녕 감감무소식이에요. 10시 출근, 자녀돌봄휴가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회사와 정부모두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발뺌하네요. 이러다 3월이 다 가고 말겠어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둔 워킹맘 김정아(38)씨. 김씨는 지난달 7일 초등학교 입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공공기관은 물론 중소기업을 비롯한 민간기업 근로자들까지 자녀 돌봄에 곤란을 겪지 않도록 10시 출근·자녀돌봄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정부 발표를 듣고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올해 3월부터 당장 시행하겠다는 약속에 기대가 컸다.

그러나 정부 발표 후 한 달이 지나고 입학식이 끝난 지금까지 회사와 정부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회사 인사팀에선 “언론 보도외에는 우리도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며 “관련 정부부처에 물어보라”고 했다.

김씨는 결국 대책을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문의했지만 “당사자가 사업주와 협의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답변에 황당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육아휴직을 거쳐 어린이집, 유치원 졸업 때까지 버텨내고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개학 시즌에 결국 직장을 포기하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은 워킹맘들이 육아휴직에 이어 퇴사를 고민하게 하는 두번째 고비다. 특히 3~4월은 맞벌이 부모들에게 고난의 계절이다. 입학식과 학부모총회, 담임교사 면담 등 각종 학부모 행사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모든 행사에 참여하고, 등하교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등교 시간은 출근 시간과 겹치고 하교는 퇴근보다 이르다. 모든 학부모 행사는 근무 중인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열린다.

작년 12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경력단절 여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2~3월 신학기를 전후로 초등학교 1~3학년(만 7~9세) 자녀를 둔 20~40대 직장인 여성 가입자 1만 5841명이 회사를 퇴직해 남편이나 가족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흡수됐다. 보건복지부는 이 중 상당수가 초등생 자녀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2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5년 간 국민신문고에 기혼 직장 여성들이 제기한 민원 5781건을 분석한 결과 초등학교 입학 전 자녀를 돌보는 데 따른 고충 민원이 3486건(60.3%)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초중등 자녀 교육 문제와 관련한 민원이 1605건(27.8%)으로 그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3712명(64.2%), 40대가 1540명(26.6%)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방과 후 돌봄교실의 확대, 부모의 출퇴근 시간과 자녀의 등하원 시간차 해소 등이 기혼 직장 여성의 주된 바람”이라며 “어린 자녀가 있는 직장 여성이 안심하고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보육 및 돌봄 시설을 확충하고 출퇴근 시간 조정 등 유연한 근무 환경을 정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초등입학기 돌봄공백해소대책’에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반색한 이유다. 이 대책은 초등돌봄교실 이용이 필요한 학생들은 최대한 수용하고, 초등학교 입학기 자녀를 둔 근로자가 자녀의 등하교를 도울 수 있게 10시 출근(시차 출퇴근제)과 근로시간단축, 10일 자녀돌봄휴가(무급) 등을 도입·지원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례적으로 오는 3월부터 당장 시행하겠다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명시했다.

올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워킹맘 정모(37)씨는 “20~30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아이 혼자 보내려니 걱정이 컸다. 학부모 행사도 자주 참여하고 싶은데 그 때마다 연차를 쓸 수도 없어 고민이 많았던 차에 이번 정부 대책을 보고 박수를 쳤다”고 했다.

정씨는 “3월 시행이라더니 지금껏 아무 소식이 없다. 이럴거면 뭐하러 대대적으로 대책부터 발표했는 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회사원 권모(38·여)씨는 “너무 답답해서 저출산위에 직접 전화했는데 ‘자신들은 이미 공문 보낼 것 다 보냈고 구체적 시행 여부는 사업주와 협의로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하더라”며 어이없어했다.

저출산위는 기존 근로관행을 바꿔야 하는 만큼 제도 정착에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입학기 돌봄 공백 해소 대책 진행 상황과 관련해 저출산위 관계자는 “관계부처와 협업해 입학기 자녀를 둔 근로자의 10시 출근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사단체에 협조공문을 발송해 조합원과 회원사의 제도 확산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느끼기에 미흡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가급적 많은 기업들이 초등 입학기 돌봄 대책에 동참할 수 있게 우수사례 홍보와 현장 모니터링 등을 지속해가겠다”고 해명했다.

이수연 워킹맘연구소장은 “대책만 발표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불상사를 정부가 나서서 방지하고, 제도가 활성화할 수 있게 적극적 대처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