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수익 기자
2016.09.28 06:14:00
지금은 신평사 등급장사보다 발행사 등급쇼핑 더 문제
甲에게 또하나의 선택 옵션 쥐어준 셈…공기업만 활용
우량채권에 대한 평가사 역할 무너뜨려…평가시장 축소 악순환
"정부가 평가와 선정 다 해주겠다는 건 독립성 침해 소지"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금융위원회가 이번 신용평가 선진화 방안에 포함시킨 선정신청제는 생소한 제도다. 회사채 발행기업이 원할 경우 금융감독원에 신용평가사를 선정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이 경우 현행 두 곳 이상 신평사로부터 등급을 받아야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복수평가의무를 면제하고 한 곳에서만 등급을 받아도 되는 단수평가를 허용하는 제도다.
금융위가 선정신청제를 도입한 것은 회사채 발행사의 수수료에 의존하는 신용평가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 소지를 없애자는 취지다. 그러나 제도 시행 전부터 악용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먼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채권분석가는 “동양사태 이후 제재가 강화되면서 지금은 신평사의 등급장사(후한 등급을 주겠다며 발행회사로부터 일감을 받는 행위) 못지 않게 발행기업의 등급쇼핑(신평사 3곳에 등급 의뢰후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을 매긴 2곳을 선택하고 1곳을 계약 취소하는 행위)을 차단해야하는데 이러한 고민은 이번 방안에서 소홀하게 취급됐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크레딧시장에서는 신용평가 이해상충 문제 해결 방안으로 순환·지정평가제 등이 논의되기도 했다. 순환평가는 특정기업에 대한 신용평가를 신평사들이 교대로 실시하는 방안이고 지정평가는 특정기업 신용등급 평가사를 당국이 지정해주는 방식이다. 두 방안도 각각 가지는 한계점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신평사 선택 시 기업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반면 금융위가 내놓은 선정신청제는 말 그대로 발행회사의 ‘신청’이 있어야 신평사를 ‘선정’해주는 방식이다. 갑을 관계 해소목적으로 도입했다고 하지만 갑(甲)에게 또 하나의 옵션을 쥐어준 셈이다.
금융위가 쥐어준 선정신청제란 옵션을 행사할 가능성 높은 갑(甲)은 대표적으로 공기업이 꼽힌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선정신청제를 가장 확실하게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공기업”이라며 “공기업은 어차피 국가지원가능성이 반영된 최고등급으로 신평사간 차이 없기 때문에 소액이나마 수수료 절감효과를 기대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선정신청제가 공기업의 단수평가 합법화하는 제도로 변질되면, 오히려 시장에는 공기업 재무정보 불투명성만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더 우려할 대목이다. 금융위가 공기업 독자신용등급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단수평가는 허용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또 우량 채권에 대한 평가사 역할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나타나고, 평가시장 규모도 축소해 또다시 기존 평가사들을 품질제고보다는 경쟁구도로 몰고 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위가 선정신청제를 굳이 도입한다면 발행기업이 신청 옵션을 쥐는 것이 아니라 회계법인 지정감사처럼 명확한 기준을 선정해 악용소지를 차단해야하고, 신청한 기업에게 신평사를 선정해줄때도 민간에서 통용되는 신뢰도를 기반을 두어서 선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정부가 신평사를 (역량평가로) 평가하고 (신청지정제로) 지정까지 해주겠다는 발상은 또 다른 측면에서 신평사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