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병원 의료서비스 호텔을 넘어라

by김기덕 기자
2016.04.19 06:30:00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

얼마 전 국내 언론에 외국인 남성 3명이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이색적인 장면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실렸다. 130여년 역사를 지닌 미국 뉴욕의 최고급 호텔인 ‘뉴욕 팰리스 호텔’의 객실, 교육, 식음료 책임자들이 7박 8일 동안 한국에서 교육을 받는 모습이었다.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
국내 대기업이 그 호텔을 인수한 뒤 호텔 중간 간부들을 한국의 계열사 호텔로 불러 ‘한국식 친절 서비스’ 교육을 했다고 한다. 보통 서양인들은 왕이나 대통령에게 인사할 때도 고개만 까딱하거나, 가볍게 허리를 숙이는 정도의 예만 표시할 뿐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경우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주인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미국 호텔리어들이 90도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법을 배운다는 사실은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서양식 호텔은 1888년 처음 문을 열었다. 서양식 호텔이 문을 열기 3년 전인 1885년,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이 문을 열었다. 제중원은 세브란스병원으로 성장 발전했다.

그로부터 130년 안팎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한국생산성본부의 2015년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종합 상위 20개 업체 중 호텔이 11개로 가장 많았다. 두 번째가 대학병원으로 총 4개다.

‘심신을 회복한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된 게 병원(hospital)과 호텔(hotel)이다. 고객 만족을 위한 서비스에 있어서는 라이벌인 셈이다. 호텔은 서비스가 사실상 본업이지만, 진료가 본업인 병원으로서는 서비스로 경쟁해야 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병원과 호텔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아직 둘 다 내수 업종이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들도 꽤 있고, 국내에도 많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국내 호텔이 외국에 진출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IT, 자동차 등에 비하면 세계화 발걸음이 느린 편이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내 대학병원이 중동의 병원 위탁 경영에 나서고 있으며 중국 칭다오세브란스병원 건립 작업 등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제 발걸음을 떼는 단계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의 경쟁력은 어느 수준일까?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2007년 국내 처음으로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을 받은 뒤 지금까지 연속 3회 받았다. 진료와 환자 안전, 서비스 등이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은 물론 환자와 가족들이 손쉽게 환자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환자 안전팔찌가 있다. 세브란스병원 직원이 놀이공원 어린이 손목 밴드에서 착안해 개발한 것이다. 값싸고 간단하면서도 환자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도구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내외 특허까지 받았다. 또한 혈압이나 산소포화도 등 환자의 바이탈 사인(vital sign)이 기준 밖으로 벗어나면 주치의 스마트폰으로 바로 전송되는 시스템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이처럼 국내 의료기관이 평가 인증에만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개선 노력을 하는 점을 JCI측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아직 ‘한국식 의료’, ‘한국식 병원 서비스’라 내세울만한 것이 많지는 않다. 다만 그동안의 성과와 발전 속도 등을 종합하면, 한국 의료는 외국의 유명 의료기관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거의 이르렀다고 본다.

필자는 1993년부터 20개월 간 미국 뉴욕대 메디컬센터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 때 한국과 미국 진료, 서비스의 수준은 큰 격차가 있었다. 이제는 그 격차가 미미해졌다. 좀 더 노력한다면 한국 의료도 미국에 한 수 가르쳐주는 날도 올 것이다. 호텔에 선수를 빼앗긴 병원들의 분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