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8.07.09 08:16:19
괜찮은 먹잇감이 없다 큰손들 "일단 지켜보겠소"
금리인상 노려 단기예금 가입
주식같은 위험한 투자는 줄여
"부동산 입질 아직 이른 시기"
[조선일보 제공] 고유가, 고물가, 사회혼란 등 각종 악재로 재테크 시계(視界)가 불투명해졌다. 부동산, 주식, 펀드, 예금 등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인 투자처를 손꼽기 어려워졌다. 이럴 때 돈의 향방에 민감한 부자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은행 PB(프라이빗뱅커)들이 전하는 큰손 고객들의 재테크 키워드는 '관망'과 '현금'으로 압축된다. 금리 인상기를 맞아 자금은 가급적 짧게 굴려 금리 상승에 따른 수혜를 노리며, 주식·펀드 등 위험 자산 비중은 줄이고 현금자산 비중을 높여 투자 기회를 엿본다는 것이다.
◆정기예금 가입은 일단 연기
보수적인 자산가들은 조만간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판단, 1년짜리 정기예금 가입은 가급적 미루고 있다.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지금은 1년 이상 장기 확정금리형 상품에 돈을 넣을 때가 아니라고 본다는 것이다.
30억원대 금융자산을 보유한 자영업자 김모(59)씨는 지난달 1년 만기가 돌아온 정기예금 가입액 5억원을 3개월짜리 단기 채권(연 5.4%)에 넣었다. 전 세계적으로 금리 인상 움직임이 거센 데다 우리나라 정부도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김씨는 "금리가 내려갈 확률보다 올라갈 확률이 훨씬 높은데 뭐 하러 1년짜리 정기예금에 지금 가입하느냐"며 "만기가 짧은 상품에 가입했다가 금리가 오르면 재가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진이 삼화저축은행 PB팀장은 "서너 달 후에 예금 금리 인상이 있을 것으로 보고, 단기 상품에 가입하는 자산가들이 많다"며 "금리 상승기에는 가급적 자금을 짧게 굴리는 전략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김동균 신한은행 PB팀장도 "정기예금은 가입시점 금리가 1년간 확정되니까, 돈을 짧게 굴리면서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큰손들이 상당수"라고 했다.
이에 따라 연 5%대 고금리를 주는 3개월짜리 금융상품은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에선 지난 4일 3개월 단기채권(연 5.4% 안팎)이 평소 대비 4배 이상 팔려 나갔다. 작년 말 46조원에 그쳤던 머니마켓펀드(MMF)도 대기성 자금이 몰려들면서 2일 73조원을 넘어섰다. 외환은행의 특정금전신탁(MMT) 잔액은 지난 3일 2조9218억원으로, 3월 대비 19% 늘었다.
◆유동성 최대 70%까지 높여
거액 자산가들은 주식과 채권 등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대폭 줄이고, 대신 현금자산 보유 비중을 늘리고 있다. 쉽게 말해 주식과 채권을 판 후에 다른 투자는 피하고 있다.
일단 조금이라도 평균 수익률이 플러스(+)인 펀드와 주식 등은 몽땅 정리하고 있다. 올 초 중동펀드와 라틴펀드 등에 5억원을 투자해 평균 3% 정도 수익을 올린 자산가 이모(59)씨는 이달 초 전부 환매해 머니마켓펀드(MMF)로 갈아탔다. 이씨는 "생각보다 수익은 낮지만 불확실한 게 너무 많아 만족하기로 했다"며 "추가로 들어오는 자금도 당분간 MMF에 넣어둘 것이고, 시장 수익률이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면 그때 들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만수 하나은행 WM센터 부장은 "고유가와 고물가 변수가 너무 심각해 위험 자산은 줄이고 현금 비중을 50~70%까지 높이라고 권하고 있다"며 "유가가 하락하는 것이 확실해질 때가 투자 신호"라고 말했다. 고득성 SC제일은행 PB팀장도 "국내 주가가 1500대로 주저앉고 긍정적인 경제 전망도 찾을 수 없자 환매 문의 전화를 해오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며 "당분간 상황이 나아질 조짐도 없어 보여 신규 가입도 말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조정을 받다가 상승세로 돌아선다면 싸게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한 결과가 되겠지만 현 상황에선 주가가 오름세로 돌아설 것이란 뚜렷한 징후가 없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은 아직 뒷전
물가가 상승하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실물자산인 부동산은 각광을 받으며 가격이 오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자산가들은 아직 집값 바닥을 논하기엔 이르다며 '입질'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고객들이 부동산을 손절매하고 싶지만 양도세 부담 때문에 망설인다고 한다"며 "자녀에게 증여하기 위한 수요를 제외하면 매수는 아주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정봉주 기업은행 부동산팀장도 "일본의 장기 불황 당시 부동산 상황이 어땠느냐고 묻는 부자 고객들이 많다"며 "개발 가능성이 있는 저평가된 지역만 차별적으로 상승할 뿐 전체적으로는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