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에 불가리아 작가 ‘타임 셸터’…천명관 수상 불발(종합)

by김미경 기자
2023.05.24 07:24:34

부커상 국제부문 첫 불가리아어 작품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
기대 모았던 천명관 '고래' 아쉬운 '고배'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가 선정됐다. 수상작 ‘타임 셸터’를 쓴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오른쪽)와 번역가 안젤라 로델(사진=부커재단 공식 홈페이지).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장편 ‘고래’를 쓴 천명관(59) 작가의 영국 부커상 수상이 불발했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23일 밤 10시(한국시간 24일 오전 6시) 영국 런던 스카이 가든에서 시상식을 열고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불가리아 작가 겸 시인인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55)의 ‘타임 셸터’(Time Shelter)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작품을 영어로 옮긴 번역가 안젤라 로델도 공동 수상했다. 부커상 최초로 불가리아어로 쓰여진 작품이 최종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것이다.

작품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유망한 치료법을 제공하는 한 클리닉을 둘러싼 이야기다.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과거 10년을 세세하게 재현해낸다. 이날 시상식에서 고스포디노프 작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한 삶은 이어지고, 그것이 문학의 기적”라며 수상의 기쁨을 전했다.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에 대해 “국가 정체성과 기억과 향수의 유혹적인 위험에 관한 창의적이고 파괴적이며 병적으로 유머러스한 소설”이라고 평했고, 레일라 슬리마니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장은 “우리의 기억이 사라질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고 소개했다.

1968년에 태어난 소설가이자 시인인 고스포디노프는 유명한 현대 불가리아 작가다. 데뷔작인 ‘내추럴 노벨’(1999)은 23개 언어로, 수상작 ‘타임 쉘터’(2020)는 25개 언어로 번역됐다.



천명관 장편소설 ‘고래’ 영문판(왼쪽)외 최근 출간한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사진=문학동네 제공).
천명관 작가의 ‘고래’는 아쉬운 고배를 마시게 됐다. 지난 4월 최종 후보 6명에 포함돼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이어 한국인으론 두 번째 부커상 수상의 기대를 모았다. 2004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고래’는 출간 이후 꾸준히 소설 애호가들을 사로잡아온 스테디셀러로, 10만부 넘게 팔렸다. 이번 후보 지명으로 국내 출간 19년 만에 다시 주목받았다.

수상 발표 후 천 작가는 “나온 지 거의 20년 된 ‘고래’로 갑자기 여기까지 왔다”며 “올해의 재밌는 이벤트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큰 기대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굉장히 한국적이고, 옛날 얘기이기도 한데 그렇지만 그 안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들과 감정들, 그러니까 보편성이 있어서 외국인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다”며 “외국 독자들이 이 소설의 특성을 한국 독자들과 비슷하게 느끼는 것이 재밌었다. 세상에 좋은 독자들이 많구나, 이런 것에 좀 위안이 됐다”고 했다.

한국 작품이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네 번째다. 2016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최종심에 올라 부커상 전신인 맨부커 국제부문상을 받았고, 한강의 ‘흰‘(2018년), 정보라의 ‘저주토끼’(2022년)는 최종 후보에 올랐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2005년 신설된 이 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은 비영어권 작가의 영어 번역 문학작품에 수여한다. 부커상과는 별도로 시상하며 작가와 번역가에게 함께 상을 준다. 상금은 5만 파운드로, 작가와 번역가가 절반씩 나눠 받는다.

‘고래’의 천명관 작가(오른쪽)와 김지영 번역가가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스카이가든에서 개최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에 참석해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