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말라" 요구에 동반자살 묵인한 남성…자살방조일까

by한광범 기자
2022.10.01 09:59:24

동반자살 현장서 구호조치 없이 혼자만 빠져나와
법원 "제지 쉽지 않지만 자살방조 맞다" 유죄 판결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동반자살을 시도하다 혼자 빠져나와 목숨을 구한 남성이 ‘자살방조’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성보기)는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자살방조 범행은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메신저를 통해 알게 된 B씨 등 3명과 함께 경기도 가평의 한 펜션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로 했다. 이들은 모두 유서도 남겼다. B씨 등 3명이 펜션 다른 방에서 연탄불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A씨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옆방으로 이동하는 A씨를 향해 B씨 일행 중 한 명은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다른 방에서 창문을 열어둔 채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무런 구조조치나 신고도 하지 않고 귀가했다. 이로 이해 스무 살 초반의 앳된 20대 청년 2명과 40대 남성은 그대로 숨을 거뒀다.

펜션 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숨진 B씨 일행이 A씨가 운전한 차량을 타고 펜션에 온 사실을 확인하고 A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은 “A씨가 B씨 등과 함께 자살방법을 모의하고 자살도구를 준비하고 자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등 B씨 등의 자살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자살을 방조했다”고 재판에 넘겼다.

A씨는 법정에서 “B씨 등이 자살에 이용한 용품을 준비한 것은 제가 아니고, 이들을 설치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하는 동시에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동반자살을 계획하고 물질적·정신적으로 각자가 서로의 자살 결의를 강화시켜 자살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공동해 자살방조에 이르는 관계에 있었다”며 자살방조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신고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받은 상황에서 자살시도를 제지하거나 구호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집행유예 선고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