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새는 아파트 관리비도 꼼짝마!…"빅데이터만 돌렸는데 한집 3만원씩 줄었죠"
by이정훈 기자
2019.02.15 06:08:00
[빅데이터로 똑똑해지는 행정]②실제 성공적 적용 사례
경기도만 全단지 감사에 240년…빅데이터로 단축 가능
관리비와 세부 원천데이터 비교…152억 부당부과 적발
표준분석모델, 他지자체 보급…"전국 적용땐 1.1조 절감"
행안부 "국민 직접체감 기대…모델 확산 적극 나설 것"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지난 2014년부터 `난방열사`로 불리며 자신이 살던 아파트의 난방비 비리 문제를 폭로했던 영화배우 김부선씨. 이후 부녀회장 등과의 명예훼손 소송 등으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긴 했지만 김부선씨의 폭로로 아파트 관리비의 적정성은 전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됐다. `아파트 관리비는 고지서에 나오는 대로 내면 된다`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이 역시 꼼꼼이 따져봐야 하는 거구나`하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오는 전환점이 됐다.
이후 공동주택법이 개정돼 지난 2015년부터 300세대 이상인 공동주택 관리주체는 외부회계감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외부감사를 이용할 경우 개별 가구당 수천원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데다 10곳중 8곳 가까운 아파트가 감사결과 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필요할 경우 각 시·도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개별 아파트를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할 수도 있지만 시간과 인력 부담이 어마어마하다.
전국 아파트의 27%가 집중돼 있는 경기도도 아파트 관리비가 도민들에게 적정하게 부과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자 했다. 문제는 단지 한 곳당 감사에 들어가는 시간이 2~3주일 정도라 관내 3600여개 아파트를 모두 감사하려면 240년이라는 천문학적 시간이 소모된다는 것이었다. 이 때 경기도가 주목한 것이 바로 빅데이터였다.
그 해 8월 프로젝트에 들어간 경기도는 국토교통부의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의무적으로 등록하는 각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관리비 내역과 관리비를 구성하는 37개 세부항목의 원천데이터를 비교·분석하는 방식으로 관리비 과다 청구를 잡아내기로 했다. 관건은 관리비 세부항목의 원천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었는데, 경기도는 국토교통부(전유공용면적)와 한국전력(전기요금), 지역난방공사(난방요금), 상하수도 사업소(수도세), 대한전문건설협회(아파트 공사실적), 한국감정원(아파트 입찰정보) 등에 문의해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었다.
단 각 기관별로 데이터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표준식으로 만들어 입력하고 이를 종합하는 표준분석모델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실제 관리비가 각 원천데이터를 종합해 산출한 적정 관리비보다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아파트관리비부당지수도 만들어냈다. 이 숫자가 높을수록 관리비가 너무 높게 매겨져 있다는 뜻이 된다.
일단 경기도는 관리비 부실이 의심되는 도내 556개 아파트 단지를 샘플로 뽑아 일제점검에 나섰다. 주민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있는 장기수선충당금과 관리사무소 인건비, 수선유지비, 전기, 수도, 난방비 등 6개 항목의 빅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조사한 단지 전체에서 2년간 152억원의 관리비가 과하게 부과됐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과다청구된 항목과 금액은 △청소와 경비 등 용역 감독 소홀 357개 단지, 21억원 △인건비 등 추가 지급 부적정 556개 단지, 31억원 △장기수선충당금 집행 부적정 45개 단지, 96억원 △입주민대표자회의와 선거관리위원회 운영비 집행 부적정 245개 단지, 4억원이었다.
이에 경기도는 1000만원 이상 부정이익을 취한 5개 단지를 수사 의뢰하고 이익을 환수했다. 또 500만원 이상 1000만원 미만인 528개 단지에는 행정지도와 함께 이익을 돌려받았다. 결과적으로 이들 556개 단지에 살고있던 주민수가 23만4342명이었으니 1세대당 약 3만원씩의 관리비를 낮출 수 있었던 셈이다.
당시 경기도 주택정책과에서 이 업무를 전담했던 주윤택 주무관은 “원천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여러 기관들을 참여시켜야 하는데 기관별 자료가 다 달라 이를 표준화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며 “특히 몇몇 기관은 개인정보와 관련있다는 이유로 정보 제공을 꺼려하는 곳도 있어 설득하는데 애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기억으로 6억원 정도 비용이 투입됐는데 단일 시범사업 치곤 꽤 큰 금액이라 도(道)에서도 부담스러워 했다”면서 “빅데이터가 요술방망이는 아니더라도 관리비 절감 효과가 어느정도 입증된 만큼 중앙정부가 나서서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지자체의 개발을 지원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의 첫 시도는 헛되지 않았다. 이 때 경기도와 협업했던 국토교통부는 아파트 관리비 표준분석모델을 만들었고 이는 이후 창원시와 수원시, 성남시, 김해시, 세종특별자치시 등으로 확산됐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사례가 창원시인데, 창원은 2017년 10월 표준분석모델을 이용해 관내 295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종합관리비, 인건비, 전기료, 수도료, 수선유지비, 장기충당금, 입찰과제한 등 6개 항목에 걸쳐 적정성을 분석해 종합관리비지수를 산출했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점수가 낮을수록 부당청구 가능성이 낮다.
당시 이 일이 참여했던 안태후 창원시 주사는 “조사대상 아파트들의 종합관리비지수는 평균 27.2점으로 낮게 나타나 시민들이 가졌던 관리비 부당청구 우려를 해소할 수 있었다”며 “이 때 2곳 정도의 단지가 관리비 과다청구로 적발돼 시정조치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로는 관리비 빅데이터 분석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부당청구에 관한 제보가 있을 때 특별검사를 한다든지, 3~4년마다 한번씩 검사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파트 관리비 빅데이터 분석을 시범사업으로 선정했던 행정안전부는 경기도 사례를 기초로 전국 주요 지자체에 이 표준분석모델이 확산될 경우 관리비를 10%까지는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 아파트 단지수를 감안할 때 총 1조1000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고종오 행안부 공공데이터정책과 서기관은 “여러 공공 빅데이터사업 가운데서도 아파트 관리비는 국민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과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며 “원천데이터 확보를 각 지자체가 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표준분석모델이 만들어진 만큼 다른 지자체들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이어 “이 모델을 확산시키기 위해 지자체에 대한 교육과 홍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