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담배도 안 쓰는데'···'농민보호' 외치면서 외산담배 파는 하나로마트

by최은영 기자
2017.09.28 06:00:01

27일 전국 28개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외산담배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비난이 일고 있다. 서울의 한 점포에 필립모리스의 ‘말보로’, ‘필라멘트’ 등이 전용매대에 진열돼 있다.(사진=이데일리 DB)

[이데일리 최은영 유통전문기자]국산 담뱃잎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외국산 담배가 우리 농가 보호를 위해 설립된 농협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어 비난이 일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문제는 인정하면서도 지역조합의 자율성을 침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는 등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

27일 서울 강남의 하나로마트 계산대 한쪽에는 ‘말보로’, ‘필라멘트’ 등 양담배 수십 종이 진열돼 팔리고 있었다. 외국계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는 전용매대에 광고판까지 부착했다.

이데일리 취재 결과 양담배를 판매하는 농협 유통매장은 전국 28개소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수도권에도 외산담배 거래처가 남서울농협 하나로마트 우면·양재·남성·이수점, 영동농협 청계산역점, 가평농협 자라섬점·청평점 등 8곳이나 됐다. 전용매대를 따로 둔 곳도 적지 않다.

점포마다 차이는 있지만 미국계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뿐만 아니라 영국계 담배회사 BAT, 일본계 담배회사 JTI 등 글로벌 담배회사 3사 제품이 모두 거래된다.

문제는 이들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국산 담뱃잎 수매를 조금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는 3500여 담배농가가 한해 9000여 톤의 담뱃잎을 생산하는데 이를 전량 KT&G(033780)에서 수매하고 있다.

글로벌 담배회사들은 한국 진출 초반 국산 담뱃잎 수매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BAT는 지난 2001년 국내 사천공장을 설립할 때 기자회견을 통해 국내산 잎담배를 구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구매실적은 전무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 농민 보호를 위해 설립된 농협에서 외산담배를 판매한다는 것은 설립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농협의 양담배 판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로 지적됐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 실제 농협중앙회는 지역조합이 별도법인으로 독자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들어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다.

농협중앙회는 이에 대해 “지역 단위농협에 ‘국산 농가 보호차원에서 양담배를 판매하지 말 것’을 지속적으로 당부하고 협조를 구하고 있으나 별도법인으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강제할 순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생산농가 보호 차원에서 국산품 판매를 유도하고 지도하지만 통제할 수단은 현재로선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구조라면 지역 조합이 수입 농산물을 판매한다고 해도 제재는커녕 관리·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으로, 사실상 농협중앙회가 양담배 판매를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군 PX(국방마트)에선 해외에서 생산한 JTI ‘메비우스’ 담배가 영내 불법 유통된 사실이 밝혀져 외국계 담배회사의 군납 자격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현재 군수물품은 국내에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품만 납품할 수 있도록 계약조건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방부는 계약해지 등 법적 제재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외산담배의 무차별적인 공세에 설동진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 총무국장은 “농협은 우리 농민들을 위한 조직이어야 하는데 최근 궐련형 전자담배가 인기를 끌면서 잎담배 농가의 근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농협까지 나서 외산 담배를 판매하는 건 우리 농민들을 더 어렵게 하는 처사”라면서 “글로벌 회사들의 담배는 전량 외국산 잎담배로 제조되고 이들 담배의 판매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국내산 잎담배의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농협은 농업인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한다는 설립취지를 망각해선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