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유의 웹툰파헤치기]암울했던 시대의 단면… 레진코믹스 ‘조국과 민족’

by김정유 기자
2017.06.10 06:00:00

6·10 민주항쟁 30주년… 군부정권 민낯 생생히 그려내
고문기술자 이근안 모티브 삼아… 여러 사회적 악행 묘사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10일은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6·10 민주항쟁은 군부 정권의 퇴진과 독재 반대를 기치로 삼고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겠다는 민주화 열망이 전국으로 확산된 대규모 항쟁이었다. 우리 역사의 어두운 민낯이자 과거 군부 정권의 숨기고픈 단면이다. 30년이 지났지만 국정농단 사태 및 대통령 탄핵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현 시점에서 여러 교훈을 전달해준다.

레진코믹스의 ‘조국과 민족’은 과거 군부 정권 시절의 일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과거 군부 정권 시절 ‘조국’과 ‘민족’이라는 미명 하에서 진행됐던 각종 사회적 악행을 생생히 보여준다. 지금은 비상식적이지만 당시에는 당연했던 ‘모순된 권력구조’를 사실적으로 비판했다.

‘조국과 민족’에서 악인으로 분류되는 장 실장의 사무실에 걸려있는 ‘족민과 국조’. 조국과 민족을 뒤바꿔 표현했다. (사진=레진엔터테인먼트)
주인공은 정보기관 공작원이자 고문기술자 박도훈이다. 우연한 기회에 대남 공작원으로 포섭돼 은밀한 거래를 하게 된다. 올림픽과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87년의 공안 정국을 주 무대로 했다. 빨갱이를 잡는다는 명목 하에 자행된 끔찍한 과정들이 웹툰을 통해 낱낱히 묘사된다. 주인공 박도훈은 실제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모델로 했다. 웹툰을 그린 강태진 작가는 이근안의 자서전까지 읽고 철저하게 과거 고문기술자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주력했다.



웹툰은 상당히 복잡하게 얽힌 내용으로 전개된다. 단순히 간첩을 잡고 고문하는 내용만을 그리는 게 아니라 돈과 여자 등 여러가지 욕심에 휘둘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입체감있게 나타냈다. 남북으로 갈린 사상 문제는 물론 이 사상으로 인해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간첩으로 몰려 고통스럽게 죽어갔는지 웹툰은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선에서 적절히 그려냈다. 고문이라는 악행을 저지르는 주인공을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아닌,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같이 보여준다.

장 실장은 주인공 박도훈을 자신의 수하로 삼는다. 박도훈은 장 실장 밑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정보기관에서 일을 시작한다. (사진=레진엔터테인먼트)
웹툰 속에서 남다른 포스를 풍기는 조연, 장 실장은 과거 장세동 전 안기부장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장 실장은 박도훈이 공작원으로 변신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장도훈을 어릴 때부터 자신의 아들과 함께 키우면서 남다른 애정을 쏟는다. 하지만 ‘빨갱이’로 대변되는 사상 문제 앞에서는 이런 애정도 얄짤없다. 박도훈이 간첩 조직인 ‘광명산’과 접촉한 것으로 밝혀지는 순간 꼬리를 자르듯이 바로 제거하려고 한다. 동시에 박도훈의 친구이자 부하 공작원까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차없이 제거하는 무서운 인물이다.

조국과 민족은 흑백 웹툰이다. 당시의 암울했던 분위기를 흑백의 작화로 살려냈다. 웹툰 1화에서 어린 박도훈과 장 실장이 만나는 컷 배경에 ‘족민과국조’라는 글귀는 전체 웹툰의 주제를 관통하는 포인트다. 강태진 작가는 “조국과 민족이 뒤집어져 있는 모습이 만화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과 잘 맞다고 생각했다”고 후기를 통해 설명하기도 했다. 조국과 민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장 실장의 마음이 사실은 앞뒤가 바뀐, 본질이 바뀐 것이라는 날카로운 시각을 작품 배경에 녹인 것으로 해석된다.

강태진 작가는 40살이 넘어 만화가로 데뷔한 늦깎이로 2013년 에로틱 스릴러 ‘애욕의 개구리 장갑’을 그리면서 레진코믹스와 인연을 맺었다. 신인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웹툰의 내러티브가 탄탄하고 작화도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국의 민족의 경우 영화화 판권 계약까지 이뤄지며 큰 히트를 쳤다.

주인공 박도훈은 고문기술자다. 실제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모티브로 삼은 만큼 극중에서 다양한 고문 기술을 보여준다. (사진=레진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