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악재, 환율 하락에 美·中 마찰..韓수출 '빨간불'

by성세희 기자
2017.02.03 06:00:00

취임 직후부터 광폭 행보 보이는 트럼프
환율조작 관찰국 등으로 지정된 韓 안심할 수 없어
미중 무역마찰 생기면 중간재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위험

[이데일리 성세희 신정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한국까지 환율조작국가로 예의주시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취임 직후 하락 중인 원달러 환율이 1150원대 아래로 떨어지면서 80여 일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원 달러 환율이 1200원대에 진입하면서 수출 전선에 모처럼 찾아든 활력이 한 달여 만에 막을 내렸다. 게다가 미·중 통상마찰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여 우리 기업의 고민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1.3원 내린 1146.8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올해 들어 최저치이며 지난해 11월 8일 종가 기준 1137원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트럼프 미 대통령 등이 노골적으로 달러 약세를 선호하는 듯한 시그널을 보내면서 원·달러 환율 하락 속도가 가팔라지는 모습이다.

환율 하락은 국외 시장에서 우리나라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을 낮춰 수출에 악재로 작용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표적인 수출산업인 자동차업계는 수익성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업계 매출이 4200억원 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전체 판매량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한다. 각 사별 미국 수출 비중(2016년 기준)은 현대자동차(005380)와 기아차가 각각 33만5762대(33.2%), 33만2470대(30.6%) 수준이다. 현대·기아차는 앨라배마와 조지아주에 각각 공장을 지어 현지 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공장에서 수출하는 물량이 많다.

수출 효자품목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을 수출하는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LG디스플레이(034220) 등도 수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부품 사업을 중심으로 전 분기 대비 약 3000억원의 환율 효과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SK하이닉스는 매출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 10원당 1500억원 정도의 매출 변동이 일어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헷징(Hedging)을 통해 급격한 환율 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했지만 달러화 영향력이 큰 것은 사실”이라며 “수익성과 관련된 만큼 진행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 부품업체들은 환율 하락에 미-중간 통상마찰이라는 이중고에 ‘속앓이’ 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타이어에 관세폭탄을 부과한 데 이어, 대형세탁기에 대해서도 최대 52%의 반덤핑 관세 조치를 부과되는 등 중국에 대한 견제가 본격화되면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 완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한국 부품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는다. 삼성전기(009150)는 중국 주요 스마트폰 업체인 오포(OPPO) 등에 듀얼 카메라 모듈을 수출한다. 또 LG디스플레이는 중국 전기자동차 업체 ‘패러데이퓨처(Faraday Future)’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의 약 30%(2016년 3분기 기준)를 중국에서 올린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 통상마찰을 빚는다면 완성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납품 단가를 후려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혹은 북미 생산 설비를 갖춘 회사로 거래선을 바꿀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든 중국이 미국과 통상 마찰을 빚는 순간 우리 수출에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무대책의 부품업계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중 통상마찰이 현실로 나타나면 우리나라 중간재 수출에 영향을 받게 된다”라며 “우리나라의 대중국 중간재수출 비중이 73.4%로 높은 편이라 미중 양국 갈등으로 중간재 수출 둔화 등 타격을 입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