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손동영 기자
2001.12.31 15:33:17
[edaily]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 해를 맞는 기분은 늘 새롭고 설렙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시장과 살을 맞대고있는 edaily 기자들도 하루하루가 늘 새롭습니다만 해가 바뀌는 순간에선 좀 더 특별한 느낌을 갖습니다. 주식시장, 채권시장, 외환시장, 파생금융시장 등 edaily가 접근해있는 다양한 금융시장들은 2002년 시장참가자들에게 어떤 희망과 기적을 안겨다줄까요. 채권외환팀 손동영 기자가 2002년 금융시장에서 놓쳐선 안될 포인트를 점검해봅니다.
개인적으론 외환시장을 주로 취재하고있으니 그 시장의 얘기를 먼저 할까요. 저는 매주 일요일에 한 주의 외환시장전망을 여러분께 내놓습니다. “이번주 환율은 몇원에서 몇원 사이를 오르내릴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는 게 골자죠.
지금 고백컨대 제 전망이 맞은 경우는 많지않았던 것 같습니다. 환율이 안 움직일때야 “안움직인다”고 쓰면 늘 맞으니 예외일거고요, 문제는 시장이 ‘살아 움직일 때’입니다. 이번주엔 얼마까지 환율이 오른다고 해서 맞춘 일이 몇번이나 있는지…
처음엔 제 능력탓을 많이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다른 생각이 들더군요. “시장은 원래 그런거야”, “전망은 `현재`의 전망일 뿐이야” 등등.. 그렇습니다. 올해의 시장, 이번주의 시장, 내일의 시장, 아니 당장 한시간 뒤의 시장을 예측한다는건 어찌보면 무모하기까지합니다. 저는 요즘 ‘바로 지금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충실히 모으고,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행위’가 바로 전망이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렇게 얻은 전망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맞으려면 운이 필요할 거고요.
그렇다면 매일 수십, 수백건씩 쏟아지는 시장전문가들의 다양한 전망이 무의미하다는 의미일까요. 전혀 아니죠.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전망이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며 그런 전망이 있기에 비전문가들조차 시장을 이해하고 실체에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전망이 ‘현실에서 얻어낸 최적의 조합’이라면 나중에 현실로 변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아집니다. 가능성, 혹은 확률의 문제가 남겠지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2002년 금융시장 전망을 위해 지금 긁어모아야할 정보로는 뭐가 있을까요. 산업생산동향, 소비자 심리지수, 기업경기실사지수, 국제수지, 물가 등 온갖 경제지표들이 필요합니다. 개별 산업, 특히 반도체 처럼 영향력이 큰 업종의 지형도를 내다보는 구체적인 지표들도 곁들여야죠. 지금 이 순간 2002년 시장을 전망하면서 경제지표에 주목하는 건 바로 ‘경기회복’의 징후를 읽어내려는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경기가 좋아진다면 주가나 금리, 환율이 움직이는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경제교과서에 흔한 몇 개의 공식을 대입하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일이죠. 경기가 좋아지면..주가는 오르고 채권값은 떨어지고(금리가 오르겠죠), 환율도 떨어지고(원화가치가 올라가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경제전문가들은 적어도 경기회복에 대해선 확신을 갖고있더군요. 반골들이 섞여있어 “그렇지않다”고 딴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세는 아닙니다.
다음 문제는 대통령 선거나 지방선거, 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들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입니다. 대체로 소비가 살아나는 긍정적 효과를 주목하더군요. 특히 6월 월드컵이 국내경기의 불씨를 되살릴 최대호재로 꼽힙니다. 문제는 선거인데요. 선거와 정쟁(政爭)이 동의어라면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큰 부담입니다. 대선결과가 드러나는 12월중순까지는 정치적 불확실성에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다음 정권이 성격에 따라 경제정책의 기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수도 있으니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호재와 악재가 뒤섞여있군요.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이미 2002년을 ‘전쟁의 해’로 규정했습니다. 전쟁의 온갖 고통은 미국 바깥에 사는 사람들이 처참하게 짊어져야할텐데.. 미국은 당당히 전쟁을 선업한 겁니다. 군수산업이 미국경제를 일으켜세울지 주목할만합니다. 그렇지않아도 미국경제는 이미 회복의 징후를 보인다는데 말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일본 걱정을 대신 해줘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경제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와있습니다.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리든가, 재정지출을 늘리는게 방법인데 일본은 이 수단들을 모두 써먹고도 지금 이 꼴입니다. 기껏 생각해낸게 엔화가치 절하, 즉 달러/엔 환율 상승입니다. 엔화가치를 떨어뜨려 일본의 수출을 늘리고, 그래서 경기가 살아나길 빌어본다는 겁니다. 당연히 아시아 각국에겐 재앙입니다. 엔화처럼 제 나라 통화도 가치가 떨어져야할 거고, 그건 통화전쟁으로 비화할 지 모릅니다. 일본이 마지막 수단인 ‘엔화가치 끌어내리기’로도 회생하지못한다면… 일본경제 위기설이 진짜 ‘일본경제 위기’로 번지고 97년 우리나라처럼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겨우 바닥을 딛고 일어서려는 우리 경제에 좋을 리 없죠.
어떤 상황에서든 일단 ‘전망’을 내놓기 위해 정보들을 모아놓다보면 늘 이렇게 좋은 쪽과 나쁜 쪽이 뒤섞여있습니다. 거기서 어디에 무게를 둘 지 판단하는 건 각자의 몫입니다. 지금까지 나와있는 전망들은 대개 "주가와 금리가 오르고 환율이 내리는" 그림입니다. 일단 좋은 쪽부터 보자는 심리가 반영됐겠지요.
물론 모든 전망의 말미엔 "반면", "한편", "다만" 등의 꼬리표가 따라붙겠지요. 전망을 내놓는 모든 사람들은 도망갈 구멍은 반드시 마련해놓습니다. 어느 미국 미국 대통령이 "외팔이 경제학자"(대개의 경제학자들이 제 주장을 편 뒤 말미에 On the other hand<또 한편으로는>를 반드시 덧붙이는 데 대한 비아냥일 겁니다)를 보고싶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래도 믿거나 말거나 전망을 읽어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건 의미있는 일입니다. 사실 저도 제 전망을 잘 안믿지만 그 근거가 되는 대목들은 ‘현재의 진실’일 수 있다고 믿고 참고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