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고려” VS "역사·상징성 중요"…식목일 날짜 변경 논란 뜨겁다
by박진환 기자
2021.04.08 06:54:10
통일신라~조선 내려온 역사성에 산림녹화성공 상징성까지
반면 3월 평균기온 10년마다 0.5℃씩 상승 4월 식재 부적합
찬·반 논쟁 재점화…산림청 "국민·전문가 의견 수렴" 유보적
| 최병암 산림청장(왼쪽)이 ‘세계 산림의 날’을 맞아 3월 19일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에서 리카르도 칼데론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 사무총장, 김효은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사무차장 등과 구상나무를 심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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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최근 식목일 날짜 변경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기후변화를 이유로 기존의 “4월 5일은 너무 늦다”는 주장을, 한쪽에서는 “식목일의 역사·전통·상징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현행 유지라는 팽팽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정부는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최적의 대안의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선 현재의 식목일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성한 날인 677년(문무왕 17년) 음력 2월 25일과 조선 성종이 선농단에서 직접 논을 경작한 날(양력 4월 5일), 조선 순종황제가 친경제를 거행할 때 손수 밭을 갈고 나무를 심었던 날인 1909년 4월 5일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6년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실시했다. 이후 1949년 식목일이 공휴일로 지정됐으며, 1970년부터 산림청 주관으로 행사가 이어졌다. 1982년에는 국가 기념일로 지정됐고, 2006년 주5일 근무제 실시로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식목일 변경에 대한 논의는 2000년대 초부터 본격화됐다. 기후변화가 가장 큰 이유에서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3월의 평균기온은 10년마다 0.5℃씩 상승하는 반면 상대습도는 2.6%씩 낮아지고 있다. 이에 생물계절(개화) 시기도 변화하고 있다. 1996년부터 계방산과 광릉, 남해 등지에서 신갈나무와 졸참나무 등에 대한 개엽 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체로 기온이 1℃ 상승, 잎눈이 트는 개엽시기가 5~7일 정도 빨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낙엽활엽수의 잎눈 파열시기도 2009년 관측 이래 상당히 빨라져 최근 10년간 10일 정도 앞당겨졌다. 홍릉시험림의 봄꽃 개회시기를 지난 50년간 장기모니터링한 결과, 3~4월 평균기온은 1℃ 상승해 개화시기가 4.2일 당겨졌다. 기후변화시나리오(RCP 8.5)에 따르면 2050년에는 일부 강원도 고지대 북사면을 제외하면 전국 대부분이 3월 중순 이전에 해토상태로 변해 식목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기온 상승으로 평균 잎눈 파열시기가 4월 4일로 당겨지면서 4월 5일은 식재시기로 적합하지 않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식재시기는 땅이 녹는 해토 이후 잎눈이 트기 전에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3월 중순부터 말까지가 전국적으로 평균적인 식재 적정 기간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 이재윤 자연보호중앙연맹 총재(오른쪽)가 3월 15일 정부대전청사 산림청을 방문해 식목일 날짜 3월 변경 100만인 서명운동을 완료한 뒤 서명부를 박종호 산림청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진=자연보호중앙연맹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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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을 현행 4월이 아닌 3월로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은 자연보호중앙연맹 등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이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상승과 미래 기후변화 추세를 고려하면 식재시기에 대한 과학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사단법인 자연보호중앙연맹은 현행 식목일이 나무 심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식목일 날짜를 3월 20일로 앞당기는 운동을 2016년부터 펼치고 있다. 이재윤 자연보호중앙연맹 총재는 “지구온난화로 봄이 예년보다 일찍 찾아와 식목일에는 나무 심기가 어려워졌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식목일 날짜를 3월 20일로 변경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자연보호를 위한 식목일 날짜 변경이 빠른 시일 내로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5일 마포구 서울복합화력발전소에서 열린 제76회 식목일 기념행사에서 상지초등학교 유채림 학생과 나무를 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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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현행 4월 5일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견고하다. 일부 학계와 임업계, 퇴직 산림청 공무원들은 식목일이 갖는 상징성을 강조하고 있다. 2011년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에서 제29대 산림청장으로 임명된 이돈구 전 산림청장은 “식목일은 신라부터 이어진 상징성과 역사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기후변화를 고려한다면 식목일을 계속 변경해야 하고, 앞으로 통일이 되면 또 변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전 청장은 “이미 2월부터 식목주간인 만큼 각 지역별로 시기에 맞게 식재하면 된다. 산림 분야 원로들 대부분이 식목일을 변경하는 것에 반대하며, 정부가 할 일은 식목일 변경보다 우리 목재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한 숲가꾸기 사업 등을 확대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장기간의 평균 3월 기온 변화 그래프. 그래픽=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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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 변경에 대해 정부 입장을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2007년 참여정부는 식목일을 앞당기는 방안을 1차례 검토했다. 이후 2009년 3월 24일에는 국무회의에도 상정됐다. 그러나 당시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나무심기는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지역별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식목일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식목일은 헐벗었던 국토를 녹화한 기념일로서의 의미가 크고, 온 국민이 산림조성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역할을 해왔다”며 “식목일은 지금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통일 후의 남북한을 함께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온난화로 기온이 올랐다면 식목일보다 식목기간을 앞당기면 좋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의 부정적인 입장 표명으로 식목일 날짜 변경에 대한 정부 내 논의는 사라졌다. 이후 2016년부터는 자연보호중앙연맹 등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식목일 날짜 변경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됐다. 최근 산림청은 이전 정부의 방침과 달리 식목일 날짜 변경을 위한 절차를 공식화한 뒤 속도를 높이고 있는 모습이다. 박종호 전 산림청장이 올해 초 식목일을 3월로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국민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도 이뤄졌다.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6%이 ‘식목일 날짜 변경에 찬성’했고, ‘기존 식목일 날자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37.2%에 그쳤다. 산림청 관계자는 “식목일이 갖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하는 동시에 기후변화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한 뒤 국민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모든 가능성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