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옥수수만 팔아 50억…'농산물계 문익점' 김재훈 대표
by이윤화 기자
2020.07.09 05:30:00
‘김태희 옥수수’ 소문난 초당옥수수 시작으로 고부가가치 농산물 생산
스페셜티 원물 연구·재배부터 농가 투자지원…동반성장 소신
HMR 생산·플래그십 스토어와 60만㎡ 농원 조성, 3년 내 상장도 목표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일반 옥수수 대비 당도는 2~3배 높고 칼로리는 낮은 ‘초당(超糖)옥수수’. 풍부한 단맛과 아삭한 식감으로 찌지 않고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는 특징 덕분에 단숨에 곡물계의 ‘인싸 아이템’이 됐다. 독특한 식감과 맛 덕분에 이미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들 사이에선 한바탕 초당옥수수 영상이 유행했고, 배우 김태희가 출산 후 먹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찰옥수수 대비 5배나 비싼 가격에도 일반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인기 제품으로 등극했다.
| 김재훈 식탁이있는삶 대표가 대표 상품 초당옥수수를 들고 있다.(사진=식탁이있는삶) |
|
초당옥수수를 국내에 처음 들여온 건 김재훈(37) 식탁이있는삶 대표다. ‘초당옥수수계의 문익점’이라 불리는 김 대표는 2011년 일본 식품박람회에서 초당옥수수를 맛보고 미국산 종자를 수입해 국내 환경에 맞게 재배법을 개발했다. 2014년 상품화에 성공한 이후 국내에서 판매되는 초당옥수수 70% 이상을 식탁이있는삶에서 유통하고 있다. 초당옥수수는 지난해 12억원 어치가 팔려나갔고, 올해 하반기부터 기계식 재배·생산에 들어가면서 올 한해에만 단일품목으로 50억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식탁이있는삶은 스페셜티(Specialty·고부가가치) 식자재를 직접 연구·생산하고 자체 유통 채널 ‘퍼밀’을 통해 판매까지 하는 스페셜티푸드 컴퍼니다. 국내 150여 곳 농가와 손잡고 산지에서 직접 가져오는 신선식품만 취급한다. 초당옥수수를 시작으로 동굴 속에서 숙성한 ‘동굴 속 호박고구마’, 마치 스낵을 먹는 것처럼 바삭한 식감이 이색적인 ‘크런치 스낵토마토’ 등 단독 특성화 상품을 독점 보유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김 대표는 아프리카 기니에서 ‘킹타이거 새우’을 국내 처음으로 직수입해 화제를 모았고, 스페인 왕실에 납품하는 최고급 돼지고기인 ‘이베리코 베요타 100%’를 온라인 플랫폼에서 독점 유통하는 등 제품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한다.
식탁이있는삶의 매출은 스페셜티 식자재를 무기로 2016년 1억2000만원에서 지난해 130억원까지 성장했다. 올해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한 3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대표가 스페셜티 식자재를 알아보는 감각을 일찌감치 기를 수 있었던 것은 경북 의성에서 마늘 농사에 평생을 바친 부모님 덕분이었다. 스무 살까지만 해도 막연히 외교관을 꿈꾸며 동국대 행정학과에 진학했지만,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가 걱정이었다. 고시원에서 지내며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 ‘흑마늘 판매’였다. 2004년 친구 아버지 공장에서 흑마늘 6박스를 받아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고향인 의성에서조차 흑마늘 제조가 시범사업으로 막 시작되던 단계라 잘 알려진 상품도 아니었고, 스물한 살의 어린 학생이 마늘을 팔겠다고 나서니 잡상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선 가망이 없어 보이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김 대표는 “행정학과 공통수업으로 국제통상학과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한국무역협회나 코트라 등 충분히 수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면서 “양화대교 보수공사 현장에서 3개월간 야간 노동을 하며 2000달러 정도를 모았고, 싱가포르행 뷰티아시아 박람회 마지막 날 기적적으로 2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고 회상했다.
대학생이 우리 돈 2억4000만원 상당의 흑마늘 수출을 따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고, 덕분에 지식경제부 산하 글로벌 무역양성사업단에 들어가게 됐다. 이후 싱가포르 국립대학·워싱턴 한국무역협회 등에서 일하면서 농산물 환경 지도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농식품 가공기업들이 어떻게 자생할 수 있는지 배웠다. 당시 경험들은 지금의 회사를 일구는 자양분이 됐다.
| 김재훈 식탁이있는삶 대표는 농가와 협력해 스페셜티 식자재 시장의 독점 영역을 구축하고 2~3년 내 상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식탁이있는삶) |
|
식탁이있는삶에서 초당옥수수처럼 고부가가치 농산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산지에 직접 투자한다는 소신 덕분이다. 김 대표는 당장에 수익이 나지 않아도 신품종 종자를 재배하는 방법부터 직접 계약방식으로 유통 판로를 개척하는 것까지 ‘농업계의 벤처캐피탈(VC)’ 역할을 자처하며 농가들과의 협력을 최우선으로 한다.
대다수 이커머스 식품몰과는 다르게 산지기반으로 7년 이상 계약재배, 매입, 독점상품화, 산지구조화 작업을 구축해 환경을 다졌다. 전국 150곳의 농가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이중 스페셜티 식자재 관련 대단위 계약지도 60여 곳에 달한다. 김 대표의 부모님이 물려주신 5289㎡(1600평)의 필지에 새로운 스페셜티 제품을 심고 가꾸며 초당옥수수와 같은 히트 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2017년 하반기부터는 스타 셰프인 강레오를 상무로, 배우 위양호를 사내이사로 영입하면서 농업 콘텐츠 활성화를 위한 스마일 농부 캠페인 및 연예인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 농가를 직접 방문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소구점을 담은 기획 영상·사진·기술서 등 제품에 특화된 고품질 산지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는 등 K푸드의 경쟁력 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김 대표가 농가와의 동반성장에 힘쓰는 이유는 그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보낼 때 손내밀어 준 농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1년 케냐 몸바사에서 ‘골든딥쉬크랩’을 수입해 엄청난 수익을 내다가 소말리아 해적선에 배가 납포되면서 1년 만에 회사가 망해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했던 순간 6곳의 농가가 아무런 조건도 없이 3~4억원 어치의 농작물을 내어줬다.
그는 “당시 아무것도 없던 저에게 피땀으로 일군 농산물 유통을 맡겨주셨다. 저장 사업으로 2~3배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초당옥수수 재배를 비롯해 지금의 식탁이있는삶을 운영할 수 있는 초기 자금을 마련했다”면서 “농가는 제 사업의 근간이자 경쟁력이기 때문에 그동안 저평가됐던 국내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식탁이있는삶은 이제 스페셜티 전문몰에서 오프라인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협력을 맺고 있는 농민들과 공동출자해 ‘영콘농업회사’ 법인을 세웠다. 국내 최초로 첨단수확센터를 열어 초당옥수수를 비롯한 스페셜티 원물을 스마트팜 방식으로 개발하고 키워낼 계획이다. 가장 먼저 기계식 수확 설비를 도입해 초당옥수수 재배량을 늘리고, 60만㎡(18만 평) 규모 농원을 조성해 초당옥수수 테마파크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8월 1일부터는 서울 잠원에 스페셜티 식자재의 스토리를 입힌 플래그십 스토어(특화매장)를 운영한다. 스페셜티 원물로 만든 ‘레오의 식탁’ 등 100여 종 이상의 가정간편식(HMR) 제품을 판매하고, 서울·수도권으로 당일 배송 영역도 넓힐 계획이다. 매출 증대와 브랜드 대중화를 동시에 꾀하는 셈이다.
김 대표는 “자사몰인 퍼밀의 하루 매출이 2000만~2500만원에서 코로나19 이후 5000만원까지 2~3배 올랐다. 브랜드 상품인 HMR 제품은 공영홈쇼핑이나 백화점 등에 납품도 하고 있다”면서 “자사몰과 플래그십 사업을 키우면서 2~3년 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농가들과 지속적으로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식탁이있는삶은 내년 매출액을 1000억원대로 키워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에 들어간다는 목표다. 김 대표의 계획대로 실행되면 식탁이있는삶은 온라인 식품 전문몰 중 처음으로 상장하는 회사가 된다.
△2003년 안동고등학교 졸업 △2010년 동국대 행정학과·국제통상학과 졸업 △2007~2008년 지식경제부 산하 GTEP 사업단 사업팀장 △2009년 피앤케이인터내셔널 대표이사 △2009~2013년 엔팜 통합법인 대표이사 △2013년~現 농업회사법인 시즌랩㈜ 대표이사 △2014년~現 ㈜식탁이있는삶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