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제도 스무돌]백주선 변호사 "회생·파산, 시혜 아냐…자본주의 지속가능성 보장"

by노희준 기자
2019.01.03 06:17:00

회생·파산, 사회주의에 없는 자본주의 고유 시스템
시혜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탕감이 더 바람직해서
평생 많아야 탕감 2~3번...이 역시 흔치 않아

백주선 변호사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도산제도는 빚을 그대로 두지 말고 털어주는 게 사회경제적으로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사회적 효용론)에서 나왔습니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백주선(46·사법연수원 39기) 법률사무소 상생 변호사는 최근 서울 서초동 상생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재정적 파탄에 직면한 개인채무자의 채무를 법원이 조정해주는 개인회생·파산제도가 “채권자가 부도덕하거나 채무자가 약자라는 차원, 채무자 시혜 차원에서 나온 제도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개인 회생 및 파산은 빚을 다 갚지 못하는 지급불능 상태를 법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이다. 회생은 일정 소득이 있는 경우 생활비를 뺀 소득으로 최장 3년간 빚을 갚으면 나머지를 면책해준다. 파산은 현재 자산 중 일부를 남기고 빚을 갚고 못 갚는 부분은 정리하는 절차다.

백 변호사는 중국의 예를 들며 개인파산 제도가 사회주의에 없는 자본주의 고유의 시스템이자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에는 기업파산 제도는 있지만 개인 파산제도는 없다”며 “사회주의 이념과 지향을 보면 빚을 질 필요가 없어 파산 제도가 없지만 자본주의는 개인에게 생활을 맡기고 신용을 통해서라도 스스로 개척해나가라는 경제체제로 어느 순간 경제적 파탄이 일어나면 그걸 그대로 두지 말고 정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다한 빚을 어느시점 탕감하지 않으면 채무자의 인적 자본을 사장시켜 그를 통한 사회 발전의 기회가 사라진다. 채권자 입장에서도 부실을 털지 못해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국가 역시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 하는 인구가 늘어 복지부담이 계속 불어난다.

백 변호사는 특히 회생보다 파산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우선 면책 과정에서 채권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법원이 따지지 말고 면책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은 채권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법원이 면책 여부를 심사해 면책 불허가 사유가 없어야 면책을 해주고 있다”며 “법원이 지나치게 후견인적 자세로 개입하고 판단 역시 그때그때 달라 제도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개인파산 선고시 최소한의 채무자 생계유지에 필요해 채권자 분배 재산에서 제외하는 면제재산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 변호사는 “6개월치 생활비로 현금 900만원, 소액임차보증금 정도의 보증금으로 서울 기준으로 3700만원 정도인데 너무 적다”고 강조했다. 회생 제도에서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별제권(다른 채권보다 우선해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회생제도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상황에서 회생이 개시되면 강제 담보처분이 가능해 채무자가 집을 지키지 못 하고 길거리로 내쫓기게 된다.

백 변호사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지적에는 “채무자가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못 갚게 됐을 때 채무자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며 “금융기관은 돈 떼일 위험을 감수하고 영리를 위해 차주 상환능력을 심사해 적정한 대출 범위와 이자율로 대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 것”라고 말했다.

일각의 도산제도 남용 우려에도 선을 그었다. 백 변호사는 “회생과 파산은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면책이 된다”며 “평생 2번 많으면 3번 정도 면책 받지만 그런 경우도 흔치 않다”고 말했다. 실제 회생이나 파산을 통해 한번 면책받고 다시 제도를 이용하려면 회생은 5년 파산은 7년이 흘러야 한다.

“기업가 정신과 실패를 경험삼아 새로운 길을 열기 원한다면 도산에 더 관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파산·회생을 몇 번 했느냐보다 그래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할 의사가 있느냐 그리고 재기의 기회는 보장되고 있느냐 시각에서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