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25시]“사실 나 보수야” 어느 국민의당 출신 의원의 고백

by임현영 기자
2018.07.08 10:45:08

국민,바른정당 의원 간 이질성 '잠복'
지난 워크샵에서 불거진 '정체성'논쟁
국민의당 모 의원 "나 사실 보수맞다"
호남 지역구 탓에 '진보' 강조하는 속사정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지난달 19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야영장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이종훈 정치평론가가 배석한 가운데 자유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임현영 기자] 물과 기름을 한 컵에 담으면 이런 느낌일까요. 최근 바른미래당의 상황을 두고 떠오르는 말입니다.

지방선거 참패 후 바른미래당은 ‘김동철 비상대책위’를 세워 당을 추스리고 있습니다. 계파다툼이 극으로 치닫는 자유한국당에 밀려 상대적으로 고요해보이지만 내부는 다릅니다. 오히려 ‘폭풍전야’에 가깝습니다. 정체성부터 전당대회까지 국민의당·바른정당 출신 간의 이질성이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출범한 바른미래당은 여전히 ‘한 지붕 두 가족’입니다. 이론상으론 그럴 듯한 통합이었습니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인 우파로, 바른정당 역시 당시 한국당보다 좌측에 있습니다. 종이에 직선을 긋고 이념 스펙트럼에 따라 정당을 나열할 경우 함께 ‘중도’로 묶입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특히 이념을 지칭하는 보수·진보는 바른미래당의 ‘금기어’가 되버렸습니다. 뼛속부터 보수라고 여기는 바른정당 출신과 보수란 단어 자체를 거부하는 국민의당 출신의 입장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진보란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체성 논란은 지난달 19~20일 이틀간 걸쳐 실시한 워크샵에서 다시 불거졌습니다. 선거를 치르느라 미뤄온 ‘화학적 결합’을 도모하기위한 취지로 실시된 행사입니다. 이날 워크샵에서도 정체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얼마 전 만난 워크샵에 참석한 관계자에게서 뒷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과 기름과 같은 내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소개합니다.



비공개 토론시간에 바른정당 출신 A의원은 국민의당 출신 B의원에게 “우리 까놓고 이야기해보자. 솔직히 당신이 나보다 더 보수아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잠시 망설인 B의원은 “그렇다. 나는 사실 보수다”라고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보수를 내세우면 한국당의 아류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부연했습니다. 한국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보수노선을 걸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사실 B의원을 비롯한 몇몇 국민의당 출신은 바른정당 출신보다 보수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차마 보수라고 말할 수는 없는 속사정이 있습니다. 바로 호남 지역구 탓입니다. 진보성향이 강한 지역 특성으로 보수 간판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뒷이야기를 전해준 인사는 이를 두고 “지역구 탓인 것은 모두가 안다”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진보의 외피가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이날 워크샵을 마치고 발표한 합의문에는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공존하는 정당’이라는 문구가 포함됐습니다. 기존 창당선언문에 없던 ‘진보’표현이 등장하며 당은 또 한번 술렁였습니다.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이 ‘진보를 넣자’고 강하게 어필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다시 말해 바른미래당 내부에는 보수를 표방하는 사람과 죽어도 보수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정작 후자는 전자보다 더 보수적인 태도를 지녔는 데 말입니다. 모순의 연속입니다. 이는 구성원 간의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념 정체성에 대해 바른미래당은 ‘일단 덮자’는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이념에 함몰되지 말고 정책으로 승부하자’는 겁니다. 취지는 좋습니다. 새롭게 취임한 김관영 원내대표가 이념적 발언을 배제하고 경제정책 워크샵을 주도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갈등 요인은 여전히 잠복해있습니다. 아마 다음달 19일열리는 차기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폭발할 듯 보입니다. 이미 전당대회 룰을 놓고 국민·바른정당 출신 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요. 물과 기름이 담긴 컵이 다시 한번 요동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