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투성이 대출규제]③자영업자대출이 중기대출(?)…사실상 가계 용도 사용

by박일경 기자
2018.06.18 06:00:00

가계대출 규제 사각지대 ‘소호대출’
상대적으로 문 넓은 중기대출 취급
숙박·음식업 영세업자 이용 많아
정부 규제 넓히면서 부실 위험 커져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예대율 규제 등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이 오히려 취약차주의 부실 위험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영업자대출은 통상 개인사업자(SOHO·소호)대출로 나가는데 은행권에서는 이를 중소기업대출로 분류하고 있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포용적 금융’을 강조하는 정부 방침에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기업대출을 통해 실절적인 가계대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정부는 가계부채 증가 취약부문인 개인사업자대출에 대해 지난 3월부터 ‘개인사업자대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소호대출이라 불리는 중기대출엔 숙박·음식점 분야 자영업자 상당수가 포함돼 있어 은행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돈이 필요한 서민들이 제2금융권으로 몰려가는 풍선효과가 심각해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일률적으로 비율을 정해 통제하는 방식보다는 소득에 비해 빚이 많다든지 한계차주에 대한 2금융권 대출 급증 등과 같은 미시적 조정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소득에 관한 정확한 증빙 자료는 국세청이 갖고 있을 텐데 차주 분석을 위해 필요한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못한다고 해도 범정부 차원에서 미세적인 통계는 수집하는 것이 옳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자영업자대출을 가계대출로 볼 것인지, 중기대출로 볼 것인지 명확히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은행연합회 등 유관기관에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2월 ‘가계부채 부실화 가능성과 대응방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전체 차주를 약 2837만명으로 추정했다. 이를 근거로 저소득 또는 저신용 차주를 864만명 수준으로 추산했다.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취약차주는 저소득·저신용·다중채무자·영세자영업자 등 다양한 계층을 포함하고 있어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정책대상 취약차주를 선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연구를 주도한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권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시행 등으로 취약계층의 차입수요가 2금융권으로 이동하면서 다중채무자 확대 등의 부작용이 염려된다”면서 “통상 가계는 은행권으로부터 먼저 대출을 받은 후 비은행권 대출을 받는 점에 비춰 비은행권 대출이 늘어나면 다수의 금융회사로부터 동시에 차입한 다중채무자도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임 연구위원은 이어 “은행과 2금융권으로부터 동시에 대출받은 다중채무자 증가는 2금융권 발생 부실이 은행권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현 정부 들어 가계부채 문제를 가격 통제와 양적 규제로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시중은행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실수요자이면서 우량차주인 고객에 대한 대출이 줄게 되면 불필요한 신용경색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간에 의한 돈 흐름까지 원활하지 못하면 경기 회복세가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월별로 여·수신 금리와 주택담보대출 잔액을 체크해 정부 정책 방향에 맞지 않는다고 금리를 낮추라든가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을 둔화시키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대해 은행권에선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부행장은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대출이 늘어나는 현상은 자연스런 일이고, 금리는 은행 자율적으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수시로 조정하고 있다”며 “대출 부실에 의한 책임은 당연히 은행 스스로 져야할 것이므로 시장실패로 인한 정부 개입이 아닌 이상 가격 통제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