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쉼터?…흡연실로 전락한 공개공지

by김성훈 기자
2017.08.14 06:30:00

쾌적한 환경 조성은커녕 흡연가들 천국
금연구역 1만 6984곳…금연 단속 '사각지대'로 방치
전문가들 "공개공지 관리·감독 제도 확립 고민해야"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 조성된 공개공지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김성훈 기자)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여기가 쉼터인지 담배 피우는 곳인지 모르겠네요.”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27·여)씨는 “주변에 마땅한 흡연 부스가 없다 보니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조성해 놓은 공개공지가 졸지에 흡연 구역으로 전략했다”고 어이없어 했다. 한풀 꺾이긴 했으나 여전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11일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인근 한 아파트 단지. 퇴근 시간이 지나자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아파트 단지 앞 쉼터로 모여들었다. 각자 주머니에서 꺼내 문 담배 연기가 금세 주변을 가득 채웠다. 이들은 ‘금연은 배려’라고 적힌 공원 주변의 스티커나 주위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민의 휴식공간인 공개공지가 담배연기에 찌들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한 공개공지가 담배꽁초 등 쓰레기에 얼룩져 있다. (사진=김성훈 기자)
공개공지란 건축법에 따라 쾌적한 지역 환경을 위해 사적인 대지 안에 조성토록 강제하는 것으로, 일반 대중에게 상시 개방하는 공적 공간(POPS·Privately Owned Public Space)이다.

문화나 종교, 숙박 시설 등 바닥 면적 합계가 5000㎡ 이상 건축물을 지을 경우 건축주가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받는 대신 전체 대지면적의 약 10% 정도를 일반 시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조경 시설 등으로 꾸민 공간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간접 흡연 피해를 막겠다며 금연구역을 확대하면서 갈 곳을 잃은 흡연자들이 공개공지로 몰려들면서 조성 취지와 달리 도심 속 쉼터가 아닌 흡연실로 전락한 곳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유지인 까닭에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단속하기도 불가능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공개공지는 아파트 재건축이 한창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와 대규모 빌딩이 밀집한 마포·중구를 중심으로 1582곳(지난해 1월 기준)이 있다. 전체 면적은 103만 7000㎡로 축구장(7140㎡) 145배 크기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 공개공지가 건물주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흡연자들의 천국이 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서 오피스텔 건물 수십 채가 들어선 강서구 마곡지구의 경우 강서로 6차선을 따라 늘어선 오피스텔 앞 공개공지마다 담배꽁초가 수두룩했다.

E오피스텔 관리사업단 관계자는 “건축주나 입주자들의 관리비로 공개공지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보니 청소 외에 흡연 단속 업무 등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시와 지자체는 최근 몇 년 새 껑충 뛴 금연구역 단속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서울 시내 금연 구역은 2011년 670곳에서 지난해 1만 6984곳으로 25배 규모나 늘었다. 하지만 금연구역 내 흡연 단속 인력은 자치구별로 3~4명 수준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 전역의 공개공지에 대한 단속까지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공개공지 활용을 높이기 위해 활성화 방안 등을 시행하고 있다”면서도 “지자체나 건물주의 요청이 들어오는 공개공지를 제외하고는 단속이나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턱없이 부족한 흡연 구역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시내 흡연 부스는 이달 현재 43개소(개방형 28개·폐쇄형 4개·완전폐쇄형 11개)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자치구 25곳 중 11곳만 흡연 부스를 설치해 나머지 자치구에는 아예 흡연 부스조차 없다.

전문가들은 공개공지에 대한 합리적인 관리·감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최근 아파트 재건축이나 빌딩 신축 등이 잇따르며 공개공지 조성도 늘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관리나 활용 방안은 부실하다”며 “공개공지 내 흡연 부스를 마련하는 등 합리적인 관리·감독 제도 확립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